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의 삶은 그 자체가 현대의 신데렐라 이야기다. 롤링은 1997년 해리 포터 시리즈 제1탄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내놓기 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이혼녀였다. 생활비가 모자라 정부보조금으로 딸을 양육했다. 작가지망생이어서 글을 쓰고 싶었으나 집에는 집필공간이 없어서 동네 찻집의 책상에서 손으로 원고를 써내려 가던 처지였다.
▲ 해리 포터의 저자 조앤 K. 롤링
그랬던 롤링이 지금은 세계적인 명사가 됐다. 2001년 의사와 재혼해서 현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두 아이를 포함, 세 아이들과 함께 19세기에 세워진 스코틀랜드의 유서 깊은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덕분에 롤링은 천문학적인 부를 쌓았다. 2005년 12월 현재 그의 재산은 약 1조원에 이른다. 사회적인 명예도 최상급이다. 그는 포브스지(誌)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도 포함돼 있다. 그것도 순위가 급상승 추세다. 올해는 지난해 85위보다 45계단이나 껑충 뛰어오른 40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올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75위였다.
조앤 K. 롤링은 1965년 7월 31일 영국 치핑 소드베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피터 롤링은 비행기 공장 지배인, 어머니 앤 롤링은 실험실 연구원이었다. 그의 부모는 영국의 전원과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는 태어난 순간부터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인 아이였다. 아이는 종종 자기 방이나 뒤뜰의 키 큰 풀숲 속에서 상상놀이를 즐겨하곤 했다. 그런 아이의 상상력을 한껏 길러주기 위해 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집안이 온통 책으로 뒤덮여 있었고, 부모님은 끊임없이 번갈아가며 내게 책을 읽어주셨지요.”
그는 일찍부터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드러낸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 디가 세 살이 되자 다섯 살짜리 언니는 환상적인 동물들과 이상야릇한 장소들에 대해 앞뒤가 제대로 갖춰진 이야기들을 만들어서 동생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는 여섯 살이 되자 첫 번째 이야기를 종이 위에 연필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래빗(Rabbit)이란 이름의 토끼에 관한 것이었다. 아이의 머릿속에선 홍역에 걸려 고생하는 토끼와, 토끼를 문병 온 몸집이 큰 꿀벌 미스 비(Miss Bee)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에 관한 깜찍한 이야기가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후 수년간 오로지 토끼에 관한 이야기만 썼으며 마치 토끼에 중독이라도 된 듯했다”고 말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다행히 친구들은 그의 글을 흥미로워했다. “점심시간 때 친구들을 모아놓고 기나긴 이야기를 연속해서 들려주곤 했지요. 이야기 속에서 영웅적이고 신나는 모험을 마음껏 즐기곤 했어요.”
그후 옛 남자친구와의 재회를 계기로 맨체스터 상공회의소 사무직을 얻었다. 집이 있는 런던과 맨체스터를 기차로 오갔다. 그러던 어느 날, 런던으로 돌아오던 중 갑자기 기차가 덜커덩 멈추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그때, 해리 포터에 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내 마음의 눈에 해리와 그가 다니는 마법학교가 선명하게 보였어요.”
기차가 런던의 나이츠 크로스(Knight’s Cross)역에 정차했을 때 그의 머릿속엔 이미 해리 포터 첫 번째 이야기의 기본 컨셉트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해리의 흥미진진한 모험과 등장인물들의 기기묘묘한 이름을 고안해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달콤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정신적 지주인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것이다. 게다가 스물여섯 나이에 또 다시 일자리를 잃었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던 중 평소에 품었던 ‘먼 나라에 가서 글을 가르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다. 포르투갈 북부의 소도시 오포르토의 한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여기서 해리 포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한다.
이 무렵 그는 포르투갈의 TV 방송국 기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그러나 첫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1992년 첫 아이를 임신했으나 남편과는 결국 이혼하게 된다. 그는 여동생으로부터 ‘가까운 곳에서 같이 살자’는 편지를 받고 영국 에든버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딸 제시카와 옷가방 하나, 그리고 제3장까지 완성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원고뭉치가 그가 가진 전부였다.
그러던 중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그는 여동생 디에게 해리 포터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던 동생은 금세 빨려들어갔고 언니에게 그때까지 써놓은 원고를 모두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서 그는 용기를 얻는다. 결국 그는 1년 이내에 책을 완성해서 출판을 하기로 결심한다. 생계는 공공보조금을 신청해서 해결하기로 했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글을 써내려갔다. 집에서는 글을 쓸 공간이 없어서 잠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근처 카페로 가서 구석 테이블에 앉아 손으로 원고를 썼다. 그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원고가 완성되자 그의 글에 관심을 보인 크리스토퍼 리틀이라는 에이전트를 통해 영국 굴지의 출판사들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원고를 받아주겠다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그러다가 1996년 블룸스베리(Bloomsbury)라는 출판사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이 출판사가 제시한 판권 금액은 겨우 2000파운드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블룸스베리에서 판권을 사간 지 몇 달도 안 돼 이 책은 입소문을 타고 전세계 출판업자들로부터 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대한 관심은 1997년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전시회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책의 내용에 반한 아더 A. 리바인이라는 출판기획자가 이 작품의 미국 판권을 달러로 여섯자리 숫자의 거금을 내고 산 것이다.
아동도서 출판 사상 미증유의 선불금을 기록한 이 작품에 관한 소문은 곧 세계로 퍼져나갔고 마침내 1997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영국에서 출판됐다. 오랜 세월에 걸쳐 준비된 데뷔작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지금까지 시리즈 여섯 권이 모두 공전의 히트를 치는 세계 출판사상 대기록을 세웠다.
그는 작가가 되는 길을 묻는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글을 쓰는지 감이 올 때까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우선 읽어보라고 충고한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부터 쓰기 시작하세요. 여러분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적는 겁니다.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