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무조건 0원` ETF
21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9일 이 거래소에 상장한 상장지수펀드(ETF) BNY Mellon US Large Cap Core Equity ETF(BKLC)의 운용보수는 0%다. 뉴욕 멜론 은행(BNY)이 운용하는 이 상품은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한 회사 70%의 주가를 추종한다.
이로써 지난해 시작한 ETF 무보수 전쟁의 전초전이 전면전으로 확전할지 주목된다. 지난해 4월 소파이(SoFi·Social Finance) 사(社)의 ETF 3종이 등장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보수가 낮은 상품은 있었지만, 무보수 상품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2020년 6월까지 보수를 포기한다`는 조건부였다. 그러나 이번에 BKLC이 `무조건 0원`을 내건 것이라서 전보다 파장이 세다.
업계가 전쟁하면, 투자자는 반길 일이다. 투자자는 조건이 같으면 비용이 저렴한 상품으로 몰리므로, 무보수 ETF는 선택받을 여지가 커진다. 이런 흐름에서 업계 운용 보수가 전반적으로 내려갈 수 있다. 비용이 내려가면 통상 수익이 커지기 때문에 투자자는 이득이다. 이를 두고 공멸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운용사가 손해를 감수하면서 전쟁을 계속하면 누군가는 패배해서 퇴출하고, 결국 투자자의 투자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
그러나 돈에 민감한 운용사가 밑지는 장사를 할 리 없다. 겉으로 무보수 상품을 내걸었지만, 뒤로는 각종 수익을 챙겨간다. 비밀은 대차 거래에 있다. 대차 거래는 주식 보유자가 보유한 주식을 필요한 이에게 빌려주고, 대가로 이자를 받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운용사가 펀드(투자자 자금)로 보유한 주식을 빌려주고 발생하는 수익을 챙길 수 있다. 투자자에게 얼마를 돌려줄지는 펀드 계약으로 정하는 편이다.
예컨대 세계 최대 운용사 블랙록의 지난해 운용보고서를 보면, 대차 거래 수익은 6억1700만 달러다. 2018년(6억2700만 달러)과 2017년(5억9700만 달러) 규모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신영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블랙록은 2018년 대차 거래 수익 가운데 30.8%를 회사와 자회사 몫으로 챙겼다. 이 보고서를 쓴 김남호 연구원은 “총보수율이 낮은 미국 ETF일수록 증권 대여(대차 거래)를 하는 비중이 높다는 연관성이 확인됐다”고도 했다. 이런 수익구조가 있어서 무보수 상품이 가능했던 것이다.
한국은 불가능
한국 운용업계는 운용보수 0원 상품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수익 구조로 상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탓이다. 국내 운용사도 대차 거래를 하는데 수익이 발생하면 무조건 투자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자산운용사 펀드 매니저는 “대차 거래도 엄연한 운용 행위의 하나이므로 여기서 나오는 수익은 투자자가 가져가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운용 보수와 대차 거래 수익, 둘의 관계를 따지지 않고 `미국 ETF는 무보수`라는 점에만 집중하면 투자 판단을 흐릴 수 있다.
다만, 국내 투자자는 펀드 기준가에 반영돼 돌아오는 대차 수익을 실감하기 어렵다. 현재 운용사 측은 운용 보고서에 대차 거래 수익 규모를 정확히 명시하지 않는다. 자산운용사 ETF 관계자는 “코스닥이 코스피보다 대차 거래 수익이 큰 편”이라며 “연간으로 치면 소수점 이하 정도 반영될 듯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운용업계 전체의 대차 수익 규모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실정인데, 금융 당국과 업계 대응이 아쉬운 측면이 있다. 투자자가 자신의 수익을 인식하지 못하면, 상품 집중도가 분산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