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이 입고 있는 옷만 봐도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과 패션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에서부터 레이디 가가에 이르기까지 인기 음악인의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은 팬들과 공유되면서 유행을 만들었다.
특히 1970년대 펑크록와 1990년대 그런지록은 단순한 패션 유행을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하는 문화 현상이 되면서 관련 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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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GB는 단지 새로운 음악을 듣는 장소에 그치지 않고, 반체제(anti-establishment) 문화의 통로가 됐다. CBGB는 텔레비전의 리처드 헬이 찢어진 티셔츠와 검은색 가죽 재킷, 검은색 모터사이클 부츠, 체인, 그리고 뾰족뾰족 세운 헤어스타일을 유행시킨 곳이기도 했다. 전형적인 펑크 패션이 이곳에서 탄생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불황으로 실업자가 급격히 늘어난 런던에서도 반체제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뉴욕에서 CBGB의 패션과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영국인 말콤 맥라렌은 런던으로 건너가 젊은 무정부주의자들을 끌어모아 밴드를 구성했다. 조니 로튼, 스티브 존스, 폴 쿡, 글렌 매트록의 섹스 피스톨스가 그들이다.
펑크 뮤지션들에 의해 유행이 된 의상은 20년 가까이 록 음악인들의 패션 아이콘이 됐다. 시대가 변하면서 유행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적어도 블랙 레더 재킷은 이들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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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패션 확산에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길거리 패션인 그런지 룩을 하이패션에 처음 소개한 디자이너는 마크 제이콥스였다.
페리엘리스 여성복 디자이너였던 그는 1993년 봄/가을 페리엘리스 컬렉션을 통해 그런지 음악과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넝마주이 패션을 소개했다. 플란넬 체크 셔츠와 큰 사이즈의 스웨터 등을 컨버스 운동화나 닥터마틴 군화와 함께 ‘믹스 앤 매치’했다.
처음엔 평가가 좋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난장판(mess)’이라고 혹평했고, 결과적으로 페리엘리스 여성복 라인은 종말을 고했다. 다만 제이콥스는 그런지 컬렉션을 계기로 1992년 미국 패션 디자이너협회(CFDA)가 주는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고, 그런지 룩은 당시를 대표하는 주요 패션으로 자리잡았다.
펑크 패션과 그런지 룩 이전에도 비틀스의 모즈 룩, 데이빗 보위의 글램 룩 등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패션이었다. 록 음악은 당대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며 패션 산업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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