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문화입니다. 문화는 상대적입니다. 평가 대상이 아니죠. 이런 터에 괴상한 음식(괴식·怪食)은 단어 자체로서 모순일 겁니다. 모순이 비롯한 배경을 함께 짚어보시지요. 모순에 빠지지 않도록요. <편집자주>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첩보영화 007 스펙터와 액션영화 스파이더맨은 문어(Octopus)를 악당으로 삼는다. 디즈니 만화영화 인어공주의 주인공 에리엘에게서 목소리를 앗아간 등장인물 `우르슬라`도 문어다. 문어가 서구 문화권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사는지 엿보인다. 위키피디아는 문어를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로 분류하고 있다.
| 인어공주 에리엘의 목소리를 앗아가는 우르슬라. 문어 형태를 하고 있다.(사진=디즈니숍) |
|
기괴한 생김을 보면 그럴 법도 하다. 팔(서양에서는 입으로 보기도 함)은 잘려나가도 꿈틀거리고, 그 자리에서 새 살이 돋아난다. 체내에 독(인체에 해로운 종은 드묾)과 먹물은 지니고 피부색을 자유로이 바꾼다. 똑똑하기까지 하다. 독일에서 살다간 문어 ‘파울’은 2010년 축구 경기 결과를 맞히는 걸로 유명했다.
여하튼 서구권에서 문어는 흔하게 즐기는 식재료가 아닌 편이다. 특히 유럽 대륙 북부를 중심으로 그렇다고 한다. 악마의 물고기를 먹는 데 대한 거부감 탓이 클 텐데, ‘비늘 없는 생선을 먹지 마라’는 성경 영향이라는 이도 있다. 다만, 비늘이 없는 장어를 고급 식재료로 치는 걸 보면 넉넉한 설명은 아니다. 물론 모두가 피하는 건 아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프랑스 등 지중해를 면한 유럽 대륙 남쪽 국가는 문어 요리를 즐긴다. 먹물을 바탕으로 하는 스파게티나 리조또 요리는 오징어에만 기대기서는 한계가 있다.
| 1983년 출시 이래 사랑받는 농심의 자갈치 과자. 문어 모양과 문어 맛이 무기다.(사진=농심) |
|
동양에서 문어는 익숙하게 식탁에서 오른다. 일본 오사카의 타코야키는 간식을 넘어 도시를 대표하는 명물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멀리 갈 것 없이, 식품회사 농심에서 만든 과자 ‘자갈치’는 모두에게 친숙하다. 1983년 문어모양과 맛으로 출시된 이래 꾸준히 사랑받는 장수 제품이다. 이밖에 일반 식당에서는 고급 수산물로 분류돼 비싼 값을 받기도 하지만, 동네 문방구에서 문어발·오다리 형태로 값싸게 팔리기도 한다.
정서적으로도 문어는 배척의 대상이 아니다. 고대 소설 ‘별주부전’은 문어를 용왕의 충신으로 그린다. 신뢰 장사를 하는 금융산업에도 문어가 등장한다.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은 회사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옥토’(Octo)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삼복을 맞은 여름철이면 문어는 보양식으로도 주목받는다. 문어의 빨판 흡착력을 보면 힘깨나 쓰게 생겼으니, 자연스레 스테미너 음식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문어의 동생뻘인 낙지는 형만큼 인기를 누린다. 낙지는 삶거나, 데치고, 무치는 등 조리법이 여럿인데 개중에 산채로 즐기는 `산 낙지`가 대표 요리다.
| 산낙지(사진=연합뉴스) |
|
단순히 `신선할수록 몸에 좋다`는 인식과 무관치 않는데, 밖에서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산 낙지를 보며 고개를 젓는다. 위험하기까지 한 걸 왜 즐기는지 의아하다. 한국영화 `올드보이` 주인공 오대수처럼 산 낙지를 먹다가 사고가 날 것을 우려한다. 그래서 한국을 여행한 외국인은 산 낙지를 도전 음식 목록에 올리곤 한다. 이들에게 `병든 소도 일어난다`는 낙지의 효능은 먼 나라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