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외 연구기관, 제약사들이 앞다퉈 치료제와 백신 개발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감염병 전문가들은 단기간 내 실질적 성과로 이뤄내기엔 어렵다는 견해를 보인다. 현재 진행중인 연구들은 전임상 단계의 세포 수준 연구로 임상 시험에서 효능을 입증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후보물질 개발부터 전임상, 임상, 인허가까지 최소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코로나19 유행에 대응하기 어려워 기존에 개발된 약물이나 임상 시험 중인 약물에서 백신과 치료제를 찾는 ‘약물 재창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감염병을 치료하는 약은 크게 백신, 항체 치료제, 항바이러스제로 구분할 수 있다. 백신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활성화시켜 미래에 침범할 병원체에 대해 몸이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한다. 항체 치료제는 특정 단백질에 결합해 몸속으로 침입하는 바이러스를 무력화하고,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 작용 자체를 약하게 하거나 소멸시키는 작용을 한다.
송대섭 고려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백신·치료제 연구가 ‘약물재창출’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실험실에서 후보물질을 확인하는 수준으로 임상시험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해야 한다”며 “백신 개발에는 최소 1년 반 이상, 치료제는 올 연말은 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백신, 치료제 개발 어려운 이유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경제성이 부족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백신은 우리 몸의 면역반응을 이용하는데, 완치자의 혈액에서 피를 뽑아 환자에게 투여하는 수동 면역과 자신 스스로 면역체계를 작동하도록 하는 능동면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병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 바이러스를 투여하거나 바이러스를 죽여 몸에 이식하면 항체가 생겨 면역력이 생긴다.
치료제도 같은 문제가 있지만, 시간은 단축시킬 수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에 의존해 증식하는데 치료제는 바이러스가 세포에 결합해 복제하고, 세포 밖으로 나오는 과정 등을 단계별로 막는 작용을 한다. 후보물질의 치료 효과가 빠르게 입증되면 연내에도 공급할 수도 있다.
에이즈·에볼라출혈열 치료제 주목, 국제 백신 플랫폼도 가능성 높아
국내외에서 가장 치료제로 가능성이 높은 후보물질로는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 ‘렘데시비르’,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 에이즈 치료제 ‘칼레트라’, 신종플루 치료제 ‘아비간’이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 한국에서 중증환자에 한해 칼레트라와 클로로퀸이 사용중이며, 렘데시비르와 클로로퀸은 임상 시험이 진행중이다.
이 밖에 길리어드, 바이엘, 다케다 등 글로벌 제약사와 연구기관 등이 면역 조절제, 항 괴사 약물, 암 치료제 등 보유한 후보물질을 활용해 효능을 검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셀트리온,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셀리버리 등 제약사들이 치료용 단일클론 항체 개발, 흡입용 스테로이드제제 등을 활용해 비임상 후보물질 발굴과 임상을 추진중이다.
국내에서는 SK 바이오사이언스, GC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등이 백신 개발을 준비하거나 비임상 후보물질 발굴 연구를 수행중이다.
‘약물 재창출’, 유일한 가능성이지만 부작용 완화, 효능 입증 등 가시밭길
약물 재창출은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연구자들이 즉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기존에도 항암제로 개발중인 에이즈 치료제 AZT, 심혈관 치료제로 개발 중인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같은 사례가 있었지만 감염병 관련 약물 재창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수천 종의 약물을 선별해 감염병에 효능을 보이는 약물을 찾아낼 수 있지만, 임상시험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의 출연주기는 빨라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감염병이 수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막대한 경제 피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 협력을 통한 공공백신 개발, 범용 치료제와 백신 플랫폼 기술 개발과 투자로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승택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인수공통 바이러스 연구실 팀장은 “약물재창출은 연구자들이 단기간에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코로나19를 계기로 범용 항바이러스제에 대한 임상 일부를 미리 마쳐 놓는 등 감염병 발생 시 바로 대응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