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밀알학교 앞에서 만난 최모씨(43·여)는 밀알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중1 자녀를 둔 최씨는 밀알학교의 ‘팬’이다. 지난해까지는 아이와 함께 밀알학교에서 자원봉사도 자주 했다. 당시 만난 학부모들과 밀알학교 안에 마련된 ‘요한카페’에서 종종 만나 시간을 보낸다.
최씨는 “지금은 아들이 중학교로 진학해 예전만큼 밀알학교를 자주 찾진 못한다”면서도 “밀알학교가 일원동에 있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
올해 개교 20주년을 맞은 밀알학교는 자폐아와 지적장애 학생을 교육하는 특수학교다. 2017년 3월 현재 32개 학급, 207명이 재학중이다.
연휴 전 기자가 찾은 밀알학교는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여느 학교와 다를 바 없었다. 한 학생은 친구를 보자 엄마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 껴안았다.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학부모들의 얼굴은 밝았다.
요한카페엔 이른 아침부터 학부모와 동네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있었다. 카페 옆 빵집은 아이를 등교시킨 학부모와 주민들이 아침부터 빵을 사가 진열대에 빵이 동날 정도였다. 카페 옆 ‘밀알미술관’에서 그림을 둘러보는 주민도 보였다. 카페 벽면엔 주민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무료음악회 포스터도 붙어 있다. 음악회가 열리는 ‘세라믹 팔레스홀’은 도자기를 이용해 만들어져 훌륭한 음색을 자랑한다는 게 밀알학교 측 설명이다.
밀알학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공간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30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체육관에선 매주 인근 교회나 지역단체의 행사가 열린다. 인라인스케이트 트랙이 함께 마련된 밀알학교 운동장에서도 주말마다 지역주민들의 바자회나 행사가 열린다.
주민들이 처음부터 밀알학교를 반긴 것은 아니다. 건립과정은 험난했다. 당초 1996년 개교할 예정이었으나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로 1년을 연기했다. 개교가 미뤄지면서 입학 예정이던 발달장애학생 30명이 송파구의 다른 학교에서 더부살이로 공부해야 했다.
당시 주민들은 ‘혐오시설’인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공사현장사무소를 점거하고 공사장에 난입해 몸싸움을 벌이는 등 격렬하게 항의했다. 설립허가를 내준 서울시를 상대로 102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공사장 분위기는 험악했다. 주민들은 공사를 막기 위해 밀알학교 공사부지에 컨테이너박스를 쌓아놓으려고 시도했다. 직원들의 저지로 무산됐지만 이후엔 반대로 공사장비 반입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공사장 앞을 막아서기도 했다.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대표는 “공사를 막으려는 주민들과 강행하려는 직원 사이에서 몸싸움도 있었다”며 “기공식도 열지 못하고 공사를 진행했다”고 돌이켰다.
주민공청회를 열 수도 없었다. 밀알복지재단 관계자들은 주민대표를 찾아 설득에 나섰지만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결국 공사는 공사방해중지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 1996년 2월에야 착공할 수 있었다.
1997년 3월 문을 연 밀알학교는 공간개방과 지역봉사로 주민들의 마음을 돌렸다. 2001년 문을 연 밀알아트센터가 큰 역할을 했다. 밀알아트센터내 요한카페와 밀알미술관, 콘서트홀은 주민들의 즐겨찾는 지역명소가 됐다.
|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서울 용산맹학교도 주민들의 환대를 받는 특수학교 중 한 곳이다. 사고나 질병 등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은 ‘중도 시각장애인’들이 안마기술을 배우는 곳이다. 97명이 재학 중인 이 학교도 설립 초기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다.
주민들은 맹학교 기공식을 못하도록 기공식장 앞에 ‘인간 바리케이트’를 치고 공사장에 난입해 공사장비 위에 드러눕기도 했다. 몸싸움에 옷이 찢기고 다치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용산맹학교는 2005년 개교한 뒤 지역주민을 상대로 안마봉사를 실시했다. 용산구가 주최하는 대부분의 행사에 참가해 부스를 차려놓고 안마를 직접 해준다. 학내에 학생들의 실습을 겸한 안마시술소를 마련해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4시간씩 무료로 운영한다.
설립초기부터 근무하고 있는 맹학교 교사 정모(61·남)씨는 “당시 반대했던 주민을 만나보면 ‘대체 왜 반대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우리학교가 지역사회 내에서 잘 정착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맹학교 인근에서 만난 오모(82·여)씨는 “한달에 2번씩 맹학교에서 안마를 받는데 온 몸이 시원하고 좋다”며 “그런 좋은 학교를 당시에 사람들이 왜 반대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