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th SRE]“적대적 M&A 해볼까”

국내업체간 인수합병 ‘아직’.. 주판알 튕기는 제약사들
  • 등록 2013-11-13 오전 7:00:00

    수정 2013-11-13 오전 7:00:00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최근 들어 국내제약사와 해외업체 간 인수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제약사 알보젠은 근화제약을 인수했다. 일본 복제약 1위 업체 니찌이꼬는 최근 340억원을 투자해 바이넥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와 반대로 국내업체인 대웅제약은 최근 중국 제약사 바이펑을 인수했고, 동아제약의 지주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도 해외 제약사 인수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아직 국내 업체 간 인수합병(M&A)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미약품과 크리스탈지노믹스, 녹십자와 이노셀 등과 같은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간 M&A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주로 복제약과 같은 유사 영역에 집중하는 국내업체들의 특성상 M&A에 따른 시너지가 가능한 조합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 계열 제약사들도 사업 확장을 위해 호시탐탐 인수 대상을 물색하고 있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대형 계약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지난 1987년에 삼신제약을 인수하면서 의약품 시장에 진출한 SK케미칼은 백신전문업체 동신제약을 추가로 인수한 바 있다. CJ제일제당은 유풍제약, 한일약품을 각각 인수하기도 했다. 삼양사도 인수 대상을 지속적으로 물색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업계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국내업체 간 M&A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모든 품목마다 허가 전에 제조시설 전 공정을 점검하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등 의약품의 허가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목표로 연이어 강도 높은 약가 인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건강보험 의약품의 약가를 평균 14% 깎는 일괄 약가 인하를 단행했다.

의약품 제조에 소요되는 비용은 높아지고 있지만 약가 인하에 따른 수익성 하락으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M&A가 활발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

업계에서는 경쟁사들의 지분을 대량 보유하거나 지배구조가 취약한 제약사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최근 녹십자의 일동제약 인수 시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해 일동제약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면서 보유 지분율을 15.35%까지 끌어올리며 2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녹십자가 10% 이상의 지분을 보유 중인 주요 주주들과의 세를 규합하면 경영권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다.

녹십자 측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는 입장이지만 양 사 간의 합병이 상당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녹십자의 적대적 M&A 시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녹십자는 백신, 혈액제제 등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 복제약 비중이 높은 일동제약과 사업 영역이 겹치는 분야가 많지 않다.

일동제약은 윤원영 회장 등 최대주주의 보유 지분율이 34.16% 수준이다. 지난 몇년 동안 주요주주로부터 끊임없이 경영권을 위협받았으며 윤 회장이 올해 초 주요주주로부터 주식 7%를 인수하는 초강수를 둔 결과 그나마 예전보다 지배구조가 강화됐다.

그러나 최근 변수가 발생했다. 일동제약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결정한 것이다. 일동제약은 내년 3월부터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기업분할을 추진키로 했다. 회사 측은 ‘각 사업부문의 전문화와 책임경영’을 지주사 전환의 배경으로 제시했지만 ‘경영권 안정’이 최우선 목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일동제약이 지주사 전환 이후 일동홀딩스와 일동제약의 주식 교환 등을 통해 최대주주의 일동홀딩스 지분율을 높이는 수순이 이어질 전망이다. 만약 녹십자가 내심 일동제약의 인수를 노리고 있었다면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 생긴다.

통상 지주회사체제로 전환되면 일반적으로 사업회사가 지주사보다 견조한 주가 흐름을 보인다. 녹십자 기존 입장대로 ‘단순 투자’ 목적이라면 일동홀딩스 주식을 처분하고 일동제약의 지분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녹십자가 일동홀딩스의 주식을 늘리면 일동제약 경영진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보일 수 있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동아제약의 지분을 대량 보유한 한미약품도 녹십자와 비슷한 처지다.

한미약품은 동아제약 지분을 8%가량을 보유했으며 우호지분으로 평가되는 한양정밀과 합치면 동아제약 지분을 10% 이상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 역시 “단순 투자”라는 공식적인 입장과 상관없이 동아제약의 ‘잠재적 경영권 위협자’로 평가받았던 게 사실이다.

개량신약과 복제약에 탁월한 강점을 보이는 한미약품과 신약, 천연물신약, 일반의약품 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동아제약의 결합은 국내 제약업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올해 3월 동아제약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서 한미약품은 애매한 입장이 됐다. 분할 이후 동아제약의 지주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는 분할 이후 최대주주의 주식 맞교환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업회사인 동아에스티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미약품은 현재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와 함께 동아쏘시오홀딩스 8.29%, 동아에스티의 8.71%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는데 동아제약의 지주사전환 이후 단 한 주도 사고팔지 않은 상태다. 아직 동아제약에 대한 투자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미약품은 올해 초 동아제약의 지주사 전환을 의결하는 임시주주총회에 참석했지만 표결에는 참석하지 않고 기권하면서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밖에 한올바이오파마의 주식 8.96%를 보유한 유한양행의 행보도 관심이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말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한올바이오파마에 296억원을 투자했다. 한올바이오파마는 국내업체 중 복합제와 같은 개량신약 분야에서활발한 연구개발 성과를 내고 있어서 매력적인 매물로 꼽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주요 상위제약사들의 경우 오너들이 지금까지도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 당장 적대적 M&A를시도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면서도 “업계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 언제든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18th SRE’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18th SRE는 2013년 11월13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161, min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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