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시부모님 오시는데, 장 좀 봐 주세요.”(30대 여성·대기업 직원)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생활 대행업체인 ‘시다바리’ 콜 센터에 쏟아진 주문 전화들이다. 이 업체에는 이 밖에도 ‘전날 노래방에 놓고 온 지갑 찾아주기’ ‘선물 목록 받아 대신 쇼핑해 주기’ ‘집 앞에서 택배 물건 기다렸다가 받아주기’ 등 각종 시시콜콜한 의뢰가 하루 150여 건씩 들어온다.
요금은 기본 990원부터 시작해, 거리와 시간에 따라 택시 요금처럼 올라간다. 지난해 2월에 설립된 이 업체는 불과 1년 만에 전국에 30개 가맹점을 거느리게 됐다. 이 업체 유민기(24) 대표는 “캐나다에서 마케팅 공부를 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주요 고객층은 ‘바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점점 더 희귀한 ‘자원(資源)’이 되어 가는 시대에, 시간을 벌어 주는 사업이 뜨고 있다. 생활 속 사소한 일을 아웃소싱(위탁)하는 대신, 부가가치가 높은 일에 집중하겠다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다.
지난해 12월, 20대 대학생 3명도 이런 트렌드를 파악해 부산에 생활 대행업체 ‘헬프미(Help Me)’를 차렸다. 창업자 중 한 사람인 정인웅(23·경성대 산업공학과)씨는 “3개월 동안 경제학의 기회비용 이론과 현대인의 심리, 트렌드를 면밀히 분석한 끝에 틈새 시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혼 수속을 대행해 주는 업체까지 나와 성업 중이다. 협의 이혼일 경우 5~6가지 서류만 챙겨서 법원에 제출하면 되는데, 그런 서류를 대신 떼 주거나 기재해 주는 일이다. 고객은 퀵서비스를 통해 도착한 서류에 도장을 찍어 법원에 제출만 하면 된다. 직접 한다면 하루 꼬박 걸릴 이 모든 절차가 10만원 가량이면 해결된다. 협의 이혼에 필요한 증인(2명)을 공급해 주기도 한다.
이런 업체가 인터넷에 등록된 것만 전국에 40~50개에 이른다. 이혼 수속 대행업체인 ‘Divorce Quick(디보스 퀵)’의 한 관계자는 “요즘은 바빠서 이혼도 못한다는 직장인들이 워낙 많아 대행업체들이 한 달에도 2~3개씩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 대행업체는 과거 ‘심부름업체’로부터 한발 진화된 서비스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심부름 업체는 ‘불륜 현장 잡기’ ‘돈 받아주기’ 등 스스로 하기 힘든 일을 대신 해주는 서비스였던 반면, 요즘의 생활 대행업체는 시간을 벌어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대신 봐주고, 물건 값의 3~5%를 수수료로 받는 쇼핑 대행업체가 이미 일반화됐다.
LG경제연구원 고재민 책임연구원은“시간 도우미 서비스는‘바쁨’을 먹고 산다”며“맞벌이 부부나 독신자가 늘어날수록 더 각광받는다”고 말했다.
프랑스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미래에는, 정보는 넘치기 때문에 실질적인 가치가 없고, 희소한 자원의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시간을 벌어주는 사업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