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선택 아닌 필수…'공공의 적' 플라스틱이 '유전'으로

탄소중립 가속화하며 폐플라스틱 시장 급성장
편의성에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쉽지 않아
‘쓰레기→새로운 미래자원’으로 탈바꿈
업계, 화학적 재활용에 집중…시장선점 경쟁
  • 등록 2021-12-24 오전 8:04:46

    수정 2021-12-24 오전 8:04:46

바닷가에 버려진 플라스틱을 화학적 재활용을 통해 만드는 열분해모습. 왼쪽부터 열분해유의 원료가 되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후처리된 열분해유.(사진=SK지오센트릭 제공)
[이데일리 박민 기자] SK그룹에서 석유화학 사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의 비전은 ‘세계 최대의 도시 유전 기업’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도시에서 유전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은 플라스틱 덕분이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활용해 석유화학 원료를 뽑아내 도시 유전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미다. 폐플라스틱이 더는 쓰레기나 지구를 망치는 주범이 아닌 새로운 미래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친환경 소비 확산에 플라스틱 재활용↑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은 저탄소·친환경 시대와 맞물려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이 2030년엔 지금보다 12% 성장하고, 특히 2050년에는 60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탈(脫)플라스틱’이 가속화 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는 ‘그린슈머’ 역시 늘어나며 플라스틱에 대한 비판이 나옴에도 높은 활용도와 편리성을 대체할 만한 신소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플라스틱 소비는 지속될 전망이다. 통계청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일 평균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은 1998톤(t)으로 2019년 대비 13.7% 증가했다.

이 때문에 현재의 편리함은 그대로 유지하며 환경을 지킬 수 있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의 급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플라스틱 재활용은 ‘기계적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기계적 재활용은 폐플라스틱을 잘게 분쇄한 뒤 세척·선별·혼합 등 비교적 단순한 기계적 공정을 거쳐 재생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방식이다. 지금도 재활용하는 폐플라스틱의 90% 이상이 기계적 재활용 방식으로 다시 쓰인다. 단, 비교적 상태가 좋은 플라스틱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재활용을 거듭할수록 더욱 질이 나빠져 ‘재활용 횟수’가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이에 석유·화학 업계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기업들은 ‘화학적 재활용’에 힘을 쏟고 있다. 수백에서 수만개의 단량체가 모여 구성된 고분자 형태의 플라스틱에 화학적 반응을 가해 기존 원료였던 단량체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여러 개의 레고 블록을 쌓아 만든 하나의 덩어리에서 다시 블록을 하나씩 떼내 분해하는 개념이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폐플라스틱 자원, 차세대 성장 동력”

업계에서는 폐플라스틱 자원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화학적 재활용 관련 기술 개발과 시장 선점에 나서는 중이다.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누구라도 업계 선두를 차지할 수 있고, 탄소중립 변화에도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주목을 받는 화학적 재활용 사업은 폐플라스틱에 열을 가해 고품질의 ‘열분해유’를 생산하고 또 이를 이용해 다시 플라스틱을 만들어내는 순환경제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시장 선점을 위해 가장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SK지오센트릭이다. 회사는 글로벌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 역량 확보를 위해 올해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선진 기업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 기술 확보에 매진했다. 그 결과 화학적 재활용 3대 기술로 꼽는 △해중합 △열분해 △솔벤트 추출(Solvent Extraction) 등을 모두 갖추고 친환경 소재 생산에 나서고 있다. 2025년까지 국내·외에 약 5조원을 투자해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SKC는 일본 기업과 협업을 통해 버려진 비닐 등 폐플라스틱에서 기름을 뽑아내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사업에 착수했다. 내년 1분기 가동을 목표로 울산에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파일럿 설비를 짓고 있다. 완공 시 연간 5만t 이상의 폐플라스틱으로 3만 5000t 이상의 열분해유를 생산할 수 있다. SKC는 열분해유를 우선 보일러 연료를 생산하다가 불순물 제거 수준을 차츰 높여 플라스틱 원료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정유기업인 GS칼텍스는 12월 중순부터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석유정제공정에 투입해 재활용하는 실증사업에 나섰다.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약 50t을 여수공장 고도화시설에 투입해 석유 제품 공정 가운데 중간 제품인 프로필렌(Propylene)을 생산할 계획이다. 중간제품은 석유 화학 공정의 원료로 다시 투입해 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 등 자원순환형 플라스틱 제품으로 최종 생산한다.

현대오일뱅크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원유 정제 공정에 투입해 친환경 납사를 생산하는 실증 연구에 나섰다. 이렇게 생산한 납사는 석유화학사에 공급해 새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세천 공주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화학적 재활용은 분자 구조 자체를 변화해 원료를 재생산하는 방식이어서 여러 소재가 혼합된 상태로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이나 오염되거나 재생 불가능한 플라스틱도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며 “화학적 재활용 분야는 ‘플라스틱 순환경제’ 구축을 위한 필수 요소로 손꼽히면서 향후 고성장세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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