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시작되는 새해 정부 업무보고의 특징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제를 표방하는 우리 정치 체제에서 총리가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작년에는 탄핵 소추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대신해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 자격으로 보고받았다.
총리 주재 업무보고는 책임총리제 구현에 한 발 더 다가섰다는 데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은 일찍이 책임총리제를 공약했고, 이 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는 “헌법상 총리의 권한을 보장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매주 월요일 이 총리와 갖는 주례회동이 정책, 인사 등 현안을 폭넓게 논의하는 자리로 알려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달 말까지 이어지는 올해 업무보고의 또 다른 특징은 ‘실무 토론형’이다. 작년 8월 문재인 정부의 첫 업무보고와 마찬가지로 주제별로 몇 개 부처를 묶어 보고하되 부처별 업무보다는 부처 간 장벽을 허무는 ‘열린 토론’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게 된다. 장·차관이나 실·국장은 물론 사안에 따라 과장급과 청와대, 여당, 연구기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것도 그래서다. 주제에는 소득주도성장과 국민 삶의 질 향상,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 등이며 평창올림픽 성공과 남북관계 개선도 포함됐다.
그동안 이 총리는 밑에서 써 주는 대로 읽기만 하던 예전의 ‘대독 총리’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해 조류 인플루엔자(AI)와 살충제 계란 문제에 앞장섰으며, 연초에는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 의향을 밝히자 “또 다른 대접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청와대와는 결이 다른 발언도 서슴지 않은 게 그런 사례다. 항간에서는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 이 총리가 거론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총리의 임무로서 부족하다. 무엇보다 송영무 국방장관이나 박상기 법무장관 등의 발언을 대통령의 참모들이 거리낌없이 뒤엎곤 하는 청와대의 일방 독주에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정부 정책 결정에도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만한 내각 통할로 가상화폐 엇박자나 부동산 양극화 같은 현안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비로소 책임총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