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탐정]진경준 대박낸 장외주식, 개미들엔 '쪽박 무덤'

"상장만 하면 대박" 추천 믿고 매수했다가 반토막 손실
2014년 공식거래소 KOTC개설..투자자 외면에 존폐위기
장내시장 없는 양도세 부과에 거래수수료도 높아 불공평
정부 관리감독 밖 회색지대..손해봐도 호소할 곳 없어
  • 등록 2016-08-11 오전 6:30:00

    수정 2016-08-11 오전 6:30:00

[이데일리 성선화 기자] 전업투자자 김모씨는 “상장만 되면 두 배가 된다”는 증권방송의 전문가 말만 믿고 1억원 이상을 손해를 봤다. 지난해 더블유게임즈, 네이처리퍼블릭, 휴젤 등 7개 종목에 투자했지만 휴젤 한 종목만 빼고 반토막이 난 상황이다. 이에 그와 비슷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금융감독원에 비상장 주식 투자 피해 관련 민원을 제기했다. 그는 “증권방송에서 적극 추천한 종목들이어서 철썩같이 믿었다”며 “비상장 주식 투자로 큰 손실을 보는 바람에 생활이 엉망진창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개미들의 무덤된 장외시장

지난 9일 해임된 진경준 검사장은 2005년 6월 김정주 NXC 회장 측에서 받은 4억 2500만원 어치 비상장 주식이 일본 증시 상장 이후 30배 넘게 뻥튀기되면서 100억대 자산가 대열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공짜 주식을 넘겨받은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현직 검사장으로는 처음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을 뿐 아니라 재산 몰수에 이어 형사처벌까지 기다리는 형편이지만 한 때는 비상장 주식 대박 신화의 대표주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일반 개미 투자자들에게 진 검사장과 같은 비상장 주식 ‘상장 대박’은 그림에 떡 일 뿐이다.

최근 비상장 주식 시장이 개미 투자자들의 무덤이다. 현행법의 사각 지대를 교묘히 악용하는 전문가들이 판을 치면서 순진한 피해자들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상반기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에 유사수신 관련 신고는 298건이며, 이는 지난해 상반기 87건 대비 242.5% 폭증한 수치다.

특히 사기 수법별로는 비상장주식 투자, FX마진거래 등 증권투자 사업을 가장한 사례가 22.4%로 가장 많았다. 주식시장 상장이 사실상 불가능한 업체를 곧 상장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이고 상장 후 주식가치가 폭등할 것이라고 꼬드겨 값어치 없는 주식을 팔아치운 사례들이 적지 않다.

투자금액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주식 가격이 너무 올라 액면분할을 통해 수익률을 내거나 미국 나스닥에 상장할 예정이라며 재투자를 유인한 사례도 있다.

급성장한 장외시장, 작년부터 대중화

이처럼 비상장 주식 관련 사기가 급증한 배경에는 지난해부터 장외시장이 급성장한 영향이 컸다. 카카오, NXC처럼 상장 후 대박을 터뜨리는 기업들이 나오면서 개미 투자자들이 비상장 주식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장외시장은 급격히 팽창했다. 장외시장은 증권거래소 시장에서 거래가 되지 않는 모든 주식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개인과 개인 간의 사적 거래로 진행된다.

기존 장외주식 거래 사이트인 ‘38커뮤니케이션’를 필두로 증권방송사에서 개설한 ‘4989’ 등 장외주식 거래시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부도 장외시장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공식 거래소인‘ KOTC’를 2014년 설립했다.

장외주식 거래 관계자는 “지난해 장외 주식 종목을 커버하는 증권방송 등이 생기면서 장외시장이 급격히 커졌다”며 “2015년은 본격적인 장외주식 대중화가 시작된 원년”이라고 말했다.

비상장 주식 거래 ‘공인 거래소’ 외면

문제는 정부가 개설한 ‘공인 거래소’는 매매내역 공개 등 각종 규제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외면 당하고 있는 반면, 개인이나 증권방송 등이 개설한 사설시장을 통한 사적거래가 판치면서 피해를 보는 일반인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KOTC를 제외한 비상장 주식 거래는 개인 간의 1대 1 사적 거래에 해당된다. 금융투자협회(금투협)가 직접 운영하는 KOTC 시장의 지난해 거래량은 일평균 1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금투협 관계자는 “연간 운영비만 20억원이 들어가는 KOTC의 작년 매출액이 4억5000만원에 불과하다”며 “매년 15억원씩 적자가 나 더이상 운영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사설 사이트에서 주식 브로커들을 통한 음성적 거래가 횡행하고 있지만 이들을 감독할 수 있는 근거 자체가 없다. 현행법상 장외 주식 브로커는 금융업 종사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석준 자본시장연구원 팀장은 “국내법은 장외시장을 시장으로 보지 않는다”며 “정부의 관리 범위로 규정되는 않은 ‘회색지대’에 있다보니 투자자들이 피해를 봐도 호소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김진옥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국 팀장은 “금감원도 비상장 주식 거래에 대해 관리·감독할 법적 권한이 없다”며 “피해자들의 민원이 들어오면 경찰에 조사 의뢰를 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외주식 양성화법 개정 시급

전문가들은 장외시장 거래 투명화를 위해선 현행 자본시장법 시행령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선 가장 먼저 미국 등 선진국처럼 장외 시장을 정부의 관리가 가능한 ‘시장’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천창민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미국법은 시장의 정의를 증권사, 조직, 설비 등으로 규정한다”며 “사설 사이트도 설비에 해당해 시장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했다.

KOTC 활성화를 위해선 장내 시장과의 역차별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KOTC 거래 종목으로 지정돼 거래가 이뤄지면 장외주식 거래물량이 해당 회사의 매출실적으로 분류된다. 현행법은 50인 이상에게 공개적으로 주식을 판매한 기업만 KOTC 거래종목으로 지정 가능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현재 주주가 4000여명인 LG CNS도 이같은 공모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이유로 KOTC에서 거래가 되지 않는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장외 시장 거래 금액이 매출로 잡히면 해당회사는 분기별로 사업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기업의 입장에선 굳이 공모 절차를 밟고 매출로 잡힐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밖에 장외 주식에만 있는 양도소득세와 장내보다 비싼 거래수수료도 개선대상으로 꼽힌다. 장내 주식은 양도세가 면제지만, 비상장 주식 거래에 대해선 최대 22%의 세금이 붙는다. 거래수수료도 장내 거래(0.3%)보다 0.2%p 비싼 0.5%다.

이와관련 김성준 금융위원회 사무관은 “KOTC 활성화 자체는 정부의 정책 목표가 아니다”라며 “합리적인 대안이 나온다면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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