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성웅 기자]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난민 인정률은 0.8%에 불과하다. 총 6684명이 난민 신청을 해 단 55명만 난민 인정을 받았다. 지난 2000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의 인정률은 3.5%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35위에 그쳤다.
| 지난 2019년 이란 출신 김민혁 군 아버지(왼쪽)가 난민 지위 재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외국인청 별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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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이란 소년’으로 알려진 김민혁(18)군의 아버지 A씨 역시 지난 2016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난민 신청을 냈지만 모두 거절 당했다. 반면 김군은 두 번째 신청에서 학교 친구들이 국민 청원까지 내며 도움을 준 끝에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아들은 난민 자격을 얻었지만, 아버지는 단순 체류만 가능한 상황이 된 것.
그러다 지난달 27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단독 이새롬 판사는 A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 불인정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10년 입국 이후 11년 만에 난민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A씨의 무료 법률 대리를 맡은 곳이 바로 법무법인 태평양이었다. 태평양의 공익재단인 동천이 김 군과 A씨의 사연을 듣고 태평양 공익활동위원회를 통해 소송에 자원할 변호사를 모집했다. 그 결과 김광준·김경목·김성수·신주영 변호사와 재단법인 동천의 강용현 이사장, 이탁건 변호사가 이의 신청 및 소송에 참여했다.
16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소송 전반에 참여한 김성수(사법연수원 24기) 변호사와 신주영(변호사시험 8회) 변호사를 만나 승소를 이끌어 낸 과정을 들어 봤다.
A씨는 국내에 들어온 후 기독교로 개종한 뒤 다시 천주교로 종교를 바꿨다. 이란의 무슬림 율법에서 개종은 최대 사형까지 선고 받을 수 있는 중죄이기 때문에 박해 가능성을 이유로 난민 신청을 냈다.
법무부 난민인정협의회 위원을 역임한 김 변호사는 “법무부는 A씨가 아들을 위해 한국에 남기 위한 방법으로 천주교로 개종했다고 보고 개종의 진정성을 의심했다”며 “소송 과정에선 법원에 개종의 진정성을 종교적 열정으로 보여주기보다 보통의 신앙인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고, 재판부도 이를 잘 이해해 줬다”고 설명했다.
| 16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김민혁 군 아버지 소송에 참여한 김성수 변호사(왼쪽)와 신주영 변호사가 소송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법무법인 태평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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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가족의 가족 결합권 역시 이번 소송의 주요 쟁점이었다. 현행 난민법 37조 1항은 난민 인정자의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는 입국을 허용하지만 반대로 미성년 자녀가 난민 인정자일 때 그 직계 가족들의 난민 인정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신 변호사는 “미성년 자녀가 먼저 난민 인정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때문에 로펌에서 입법 청원 등 활동을 통해 가족 결합권의 맹점을 해결하기 보단 정말 보호 받아야 할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판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신 변호사는 이어 “A씨가 두 차례에 걸쳐 신청이 거부되고, 이의 신청도 기각돼서 포기하고 있던 상태에 좋은 결과가 나와 상당히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누군가 난민 신청을 할 때 100% 받아 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도움을 요청할 때 적어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편견 없이 들어는 줘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앞으로 더 좋은 판결들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법무부는 현재 A씨의 판결문을 분석하고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