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기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한 젊은 광고 제작자는 진행자 유재석을 앞에 앉혀두고 거침없이 말했다. 보통 유재석이 출연한 광고들이 그가 보유한 단정하고 신뢰감 있는 모습을 살리는데 집중하는 것과는 정반대 의견을 내놓은 셈이다. 기존의 틀을 부수는 그의 생각은 그가 설립한 ‘돌고래유괴단’의 철학이자 나아갈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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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화려한 출연진을 기용해 눈도장을 찍은 게 아니다. 그의 광고는 수많은 기업들이 소비자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붙잡는 힘이 있다. 잘 짜진 시나리오에 적절한 밈(Meme·인터넷 유행 요소)을 녹인 광고는 MZ세대 사이에서 재밌는 영상 콘텐츠로 통용된다.
그를 만난 건 서울 강남구 학동에 위치한 돌고래유괴단 사무실에서다. 사무실은 사람이 오가지 않는 주택가에 위치한 2층 단독 주택을 개조해 사용 중이었다. 전면 유리로 도배한 고층 건물에 위치해 도회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자아내는 일반적인 광고 회사와는 달랐다. 회사 건물부터가 기존 상식을 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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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깬 광고의 원천은 ‘절박함’
신 대표는 틀에 박힌 사고로는 차별화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신 대표는 광고 제작이 아니라 독립영화 제작을 목표로 하던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이론 공부보단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영화 촬영장을 전전하며 틈틈이 시나리오도 썼다.
군대를 제대하고 독립영화 제작에 뜻을 같이한 친구 6명과 함께 2007년 ‘돌고래유괴단’을 만들었다. 각자 10만원씩 각출해 월 35만원 짜리 인천 인하대 앞 옥탑방을 사무실 겸 숙소로 잡았다. 영화 제작에 드는 돈은 막노동 등을 해가며 충당했다. 하지만 돈 없이 열정만으로 시작한 일은 금세 한계에 부딪혔다. 빚도 3억원 넘게 쌓였다. 돌고래유괴단이 광고판으로 눈을 돌린 이유다.
독립영화를 제작하던 청년들에게 광고계 인맥이 있을 리 없었다. 어쩌다 의뢰가 들어오더라도 기존 광고의 공식을 뒤엎는 돌고래유괴단의 기획안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광고를 광고주 입맛에 맞춰 변경할 법했지만 신 대표는 이를 거부했다. 인맥도, 자금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독창성까지 없다면 광고 시장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단 확신에서다.
신 대표는 자신이 즐겨 읽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구절처럼 항상 알을 깨고 새 세계로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처음 광고 제작을 할 때부터 항상 남과는 달라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면서 “현재도 우리가 짠 시나리오를 차용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광고주를 설득하고 뜻을 굽히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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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시나리오, 톱스타 출연료까지 낮췄다
기존 광고의 공식을 깨는 참신함은 소비자는 물론이고 광고에 참여하는 이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그가 만드는 광고는 ‘올스타전’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가장 최근 작품인 게임 그랑사가의 광고 ‘연극의 왕’에는 아역배우 김강훈을 비롯해 유아인, 이경영, 박휘순, 태연, 엄태구, 조여정, 신구, 오정세, 양동근 등 연예인과 이말년, 주호민 같은 웹투니스트가 대거 등장한다. 모두 쟁쟁한 스타들로, 출연료만으로도 제작비를 아득히 넘어설 것으로 짐작됐다. 그러나 신 대표는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 섭외했다”라고 웃었다.
그는 과거 주요 대기업의 광고를 제작할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턱없이 모자란 제작비로 배우 신구와 양동근을 섭외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신 대표는 무작정 두 사람에게 SF 세계관이 담긴 시나리오를 건넸다고 한다. 황폐화한 미래 지구에 사는 소녀가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바다를 찾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출연을 고사하던 두 사람은 시나리오를 본 뒤 적은 출연료에도 참여를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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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병’ 경계하는 예술인
신 대표는 광고를 제작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접했다. 그 가운데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 신 대표는 “예술병에 걸린 사람은 싫어한다”고 콕 집어 말했다.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예술에 투신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발언이 아니었다. 자신이 작품을 만드는 목적과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예술가로서의 자아에 취해있는 사람을 경계한다는 의미다.
독립영화를 만들던 그지만 광고는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접근한다. 광고는 광고주의 상품을 알려야 하는 명확한 목적이 있고 자신은 그 목적을 위해 고용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직원을 채용할 때도 재능 이상으로 다른 사람과의 친화력을 중점적으로 본다. 자신만의 예술관에 사로잡혀 주변과 각을 세우는 인물은 조직에 해가 된다는 판단에서다. 채용조건에 팀원이 함께 즐기는 ‘피파2018’의 숙련자를 우대 조건에 넣은 이유다.
돌고래유괴단이란 이름도 ‘예술병’에 대한 반발의 결과물이다. 그는 “문법에도 맞지 않는 영어나 외래어를 사용해 그럴 듯하게 이름을 짓고 싶지 않았다”라면서 “돌고래유괴단이란 이름은,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두 단어를 조합해 재미를 주고자 했을 뿐 그 외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예술과 담을 쌓은 것은 아니다. 그는 독립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돌고래유괴단을 조직했던 초심을 기억하고 있다. 딸이 어머니의 흔적을 좇는 이야기를 골자로 한 주얼리 브랜드 ‘스톤헨지’의 브랜드 영상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화양연화’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가 제작한 단편영화들은 수많은 해외영화제에 초청돼 상을 받기도 했다. 예술성을 추구해야 할 때와 아닐 때를 명확히 구분할 따름이다.
신 대표는 돌고래유괴단을 광고 제작사를 넘어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작품을 생산하는 종합 미디어 콘텐츠 기업으로 키우겠단 목표를 세웠다. 실제로 2019년 이말년의 웹툰 ‘잠은행’을 단편영화로 제작했고 지금은 유명한 글로벌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업체들과 영화 제작을 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신 대표는…
△1982년 서울 출생 △2007년 돌고래유괴단 설립 △2016년·2017년 서울영상광고제 금상 △2018년 대한민국 광고대상 금상·뉴욕페스티벌 필름부문 동상·칸국제광고제 필름부문 숏리스트 △2019년 서울영상광고제 심사위원특별상·대한민국 광고대상 금상 △2020년 서울영상광고제 연출부문 금상·서울영상광고제 올해의 감독·대한민국 광고대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