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시장 전체가 코로나19 여파에 움츠러든 상황에서 도리어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때 벌인 투자가 시장 회복기 때 큰 수익으로 돌아온 기억이 적극적인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는 관측이다. 시장 거래 규모가 크게 위축된 국내 M&A 시장에도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지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 제약사인 애브비(AbbVie Inc.)는 ‘보톡스’로 잘 알려진 아일랜드 제약사 엘러간(Allergan) 인수에 마침표를 찍었다. 애브비는 지난 8일(현지시각) 아일랜드 고등법원으로부터 거래 계약과 승인 허가를 받고 엘러간 인수를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인수 규모만 630억 달러(약 77조원)에 달하는 메가톤급 딜이다.
천문학적 금액이지만 애브비는 실보다 득이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애브비는 이번 인수로 두 회사의 연간 통합 매출이 약 500억 달러(약 61조원)에 달할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엘러간 인수로 단순한 매출 급증은 물론 사업 다각화까지 노릴 수 있다는 전망이 거액 베팅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엘러간은 ‘보톡스’ ‘쥬비덤’ 등을 가진 대표적인 피부미용 회사다. 휴미라를 필두로 한 면역학 분야와 혈액종양학 분야에서 입지를 다진 에브비 입장에서는 엘러간 인수와 동시에 일약 미용분야 시장 공룡으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다.
사흘 후인 11일에는 미국계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화장품 기업 코티에 40억달러(약 4조9000억원) 투자 결정을 발표했다.
KKR은 코티가 운영하는 웰라와 클레롤, OPI 등 코티의 헤어·네일케어 브랜드를 분할해 만든 신설회사에 30억달러를 투입하고 지분 60%를 받기로 했다. KKR은 아울러 코티에 전환우선주(RCPS)형태로 10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 코티가 운영하는 웰라와 클레롤, OPI 등이 내놓은 헤어·네일케어 제품이 진열돼 있다.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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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R의 투자 배경에는 절반 가까이 깎인 밸류에이션(기업가치)가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미국 CNBC에 따르면 이번에 평가받은 코티의 밸류에이션은 약 43억 달러다. 코로나19 사태 전만 해도 업계 안팎에서 점치던 코티의 밸류에이션은 80억 달러. 산술적으로 석달여 기간 동안 46%의 밸류에이션 할인이 이뤄진 셈이다.
코로나19 충격에 미용업계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수요 급감으로 이어졌고 재무적 부담을 이기지 못한 코티가 눈물의 디스카운트에 동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KKR입장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기회로 이용한 것이다.
이밖에도 미국 PEF인 실버레이크는 지난달 다른 PEF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에어비앤비에 10억달러, 익스피디아에 12억달러를 각각 투자했다. 두 회사 모두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악화된 자금 사정 규제에 나선 셈이다.
실버레이크 측은 코로나19로 여행 관련 산업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두 기업 모두 사업모델이 유연하고 탄탄해 시장 회복 때 가장 큰 반등을 이뤄낼 것이란 분석에 투자를 결정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여파에도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는 글로벌 M&A 시장을 두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 경험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시장 평가보다 크게 떨어진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투자가 시장 회복기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며 “국내 M&A 시장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이어질지가 관건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