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가 금융사 표준약관 개정?…입법 폭주 본격화

[금융포커스] 野, 금소법에 시민단체 권한 마련
"소비자 보호 강화 아니라 피해 우려"
금융당국, 비합리적 요구 거절할 방침
  • 등록 2024-07-02 오전 6:00:00

    수정 2024-07-02 오전 6:00:00

[이데일리 송주오 기자]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를 계기로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 권익 보호 강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업권별 표준약관의 제·개정 권한을 소비자단체에도 부여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시민단체가 금융시장에서 기준서로 작동하는 표준약관 제·개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작용하는 만큼 논란이 예상된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금소법)을 제출했다. 시민단체 등이 금융위원회에 표준약관 제·개정을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게 골자다. 이 의원은 “은행업을 제외한 금융거래 분야에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여신전문금융업법, 보험업법 등 개별 근거 법률에 따라 금융위가 표준약관을 감독하고 있다”며 “각 근거 법률에서 소비자단체 등의 표준약관 제ㆍ개정 요청 근거를 두고 있지 않아 금융당국이 소비자 피해 요소를 조기에 파악하고 예방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시민단체 등이 공정거래위원회에 표준약관에 대해 제·개정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이 의원은 금융은 업권별 법에 따라 표준약관 감독을 금융당국이 하고 있어 금융소비자법에 같은 권리를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표준약관은 금융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단적인 예로 의무보험인 자동차 보험은 표준약관에 따라 손해율이 달라지기도 한다. 금융당국은 2016년 자동차보험 ‘렌터카 대차료 표준약관’을 개정하면서 차량 사고 시 ‘동일 차량’을 ‘동급 차량’으로 바꿨다. 이듬해인 2017년 렌터카 대차료로 지급한 보험금은 전년대비 10% 이상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반대로 금융당국은 보험사가 자동차보험에서 적정 이익을 확보하면 이듬해 보험료를 낮추도록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표준약관은 업권별뿐만 아니라 개별 상품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자동차보험, 실손보험처럼 가입자가 많은 상품일수록 미치는 영향력은 더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표준약관을 잘못 손대면 오히려 소비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21대 국회에서도 금융당국의 소비자 권익 보호 업무와 관련해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금융분쟁 관련 조정 및 중재 업무를 담당하는 독립 기관인 ‘금융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하는 내용을 담은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당시 이 의원은 “금융감독원은 인력의 한계 등으로 금융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또한 금융분쟁 조정제도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분쟁조정기구인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을 금융회사가 거부할 때가 많아 현행 제도로는 금융소비자 피해 구제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시민단체가 표준약관 제·개정 요청의 법적 근거를 갖춰도 크게 효과를 볼 수 있을지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도 시민단체가 표준약관 제·개정을 금융당국에 요구할 수 있다. 법적 근거를 갖추는 게 어떤 차이점을 만들어 낼지 모르겠다”며 “만약 시민단체가 법적 근거를 갖게 돼도 비합리적 요구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 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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