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진(42·사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분쟁대응과장은 수억대 연봉을 뒤로 하고 중앙부처 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국제분쟁해결 전문가다. 아시아 최대 국제분쟁해결 전문가 그룹 중 한곳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파트너 변호사로 근무하던 중 2022년 10월 정부가 공개모집한 ‘개방형 직위’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국제투자중재(ISDS), 미국소송 자문, 국제 수출통제 및 경제제재 실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업계 1세대 선두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김 과장은 현 국제질서를 ‘울타리 없는 정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엔 국가들이 협상을 통해 통상 질서를 만들고 그 틀 안에서 기업들이 자유롭게 거래를 했다”며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 특정 국가의 일방적 조치와 규제가 타국 정부를 뛰어 넘어 곧바로 시장과 기업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했다. 민간 실무를 하며 이러한 현실이 피부로 느껴져 공직에 입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 과장은 요즘 산업·에너지 관련 부서 직원들과 각종 점검 회의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이러한 김 과장의 노력은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분위기다. 우리나라가 WTO에서 미국과 맞붙어 승소한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사건에서 김 과장은 끈질긴 협상 끝에 미국의 상소를 포기시키고 승소판정의 최종 채택을 받아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인도 등이 한국의 대미 협상 모델을 따라 여러 WTO 분쟁사건에서 합의에 이르렀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김 과장은 지난해 말 인사혁신처가 선정한 개방형 직위 우수 민간 임용자로 선정됐다.
다만 김 과장은 “산업부 내에서 오랜 민간 경력의 법률전문가가 저 1명이라는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 그는 “민간엔 자신의 역량을 공공 분야에 활용하고 싶어 하는 인재들이 많다”며 정부가 예산을 보다 과감히 쓸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과장은 “공직에 들어서려 해도 민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처우 때문에 주저하게 되는 게 현실”이라며 “저의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다. 중앙부처가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려면 연봉책정 등에 있어서 훨씬 더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도 연봉을 높여 인재를 적극 유치한다는 방침이다. 개방형직위 연봉을 기준연봉액 170% 내에서 책정하도록 한 종전의 공무원보수규정을 지난달 개정해 상한을 폐지했다. 우주항공, 경제·금융·통상 법률, 특허심판, 빅데이터, 생명공학 등 분야에선 연봉을 자율 책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