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에 주력하는 한 메이저 제약사 임원은 “신약개발 경쟁력을 높여 글로벌 제약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복제약을 무분별하게 양산하는 공동생동 제도의 폐지가 필수적”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최근 규제개혁위원회가 식약처가 추진해오던 제네릭의약품 공동(위탁)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이하 공동생동)의 단계적 폐지를 담은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 규정’ 개정안에 대해 철회 권고를 내린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식약처에 대해서는 ‘직무유기’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규개위는 공동생동 제도가 제네릭 품질하락이나 리베이트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 제도의 폐지를 추진하던 식약처에 철회를 권고했다. 식약처는 1년 가량 이 제도 폐지를 추진하다 규개위가 철회를 권고하자 별다른 이의없이 수용하면서 제약업계로부터 불신을 사고 있다. 제약업계는 “제약업체들과 식약처가 지난 1년간 서로 의견을 조율해 마련한 공동생동 제도의 단계적 폐지 정책이 하루아침에 규개위 권고로 무산됐다”면서 “앞으로 식약처의 정책을 어떻게 믿고 따를수 있겠느냐”고 힐난했다.
특히 제네릭보다는 신약개발에 주력하는 제약사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있다. 한 신약개발 전문업체 임원은 “돈만 내고 위탁으로 참여하게 하는 공동생동은 개량신약이든 혁신신약이든 신약개발과 관련한 노하우나 역량을 전혀 키울수 없다”면서 “제네릭이 시장에 범람하면서 신약개발 경쟁력을 키워가는 제약사들의 발전마저 가로막고 있다”고 한탄했다.
업계는 공동생동을 한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의약품 가짓수를 갖추게 된 ‘일등공신(?)’으로 지목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의약품 종류는 2만4931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복제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실제 한국이 ‘복제약의 천국’이라는 것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가 지난 2018년 발생한 발사르탄 사태다. 발암물질로 드러난 발사르탄 성분을 함유한 복제약 종류가 무려 614가지에 달했다. 반면 미국은 35종에 불과했다. 한 메이저 제약사 임원은 “공동생동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 제2, 제3의 발사르탄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여전히 한국은 제2,제3 발사르탄을 함유한 복제약 종류에 있어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공동생동으로 양산하는 복제약은 브랜드만 다를뿐 약효나 성분이 모두 같아 제품차별화가 없다는게 특징이다. 제약사마다 병의원 대상으로 영업을 하면서 리베이트에 의존할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원인이다. 김대업 대한약사회 회장은 “식약처가 공동생동을 유지키로 결정하면서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악습 또한 끊질긴 생명을 보존하게 됐다”고 말했다.
식약처 또한 공동생동이 무분별한 제네릭 양산을 부추기고 중소업체 난립으로 제약산업의 도약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아래 이 제도의 폐지를 추진해왔다. 식약처 개선안은 공동생동 품목허가수를 개정안 발효 1년 후부터 원 제조사 1곳에 위탁제조사 3곳 이내로 제한한 뒤 3년 후에는 공동생동 제도를 완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행 제도는 공동생동에 참여할수 있는 제약사 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이러다보니 1개 제네릭 제품을 허가받는데 있어 원 제조사외에 20곳이 넘는 제약사가 위탁으로 공동생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공동생동 시험을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2억원 안팎인데 이런 경우 1000만원도 안되는 금액으로 제네릭 판권을 확보해 자체 브랜드로 팔수 있게 된다. 공동생동 덕에 상당수 중소 제약사는 공장시설은 물론 연구개발 인력 없이 공동생동으로 확보한 제네릭의 영업으로만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유형의 중소 제약사들을 ‘유통업체’로 부른다.
제약사당 평균 매출은 350억원에 그친다. 2조원 가량 들여야하는 신약개발은 국내 제약사들로서는 여전히 ‘남의 얘기’일수 밖에 없다. 국내 제약사들은 자금력이 달리다보니 아무리 뛰어난 약효를 가진 신약후보를 개발하고 있더라도 독자적으로 상업화를 끝까지 이뤄내지 못하고 중간에 기술수출로 마무리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근부회장은 “공동생동 제도를 존속시키게 되면 중소제약사가 난립하는 지금의 산업구조를 재편할수 없어 국내 제약사들이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며 “제약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차원에서라도 시급히 공동생동 제도는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