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해체 얘기다. 전경련이 창립 55년 만에 최대 위기에 처했다. 그제 열린 ‘최순실 청문회’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SK 최태원 회장, LG 구본무 회장 등 주요 재벌 총수들이 탈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됐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해체 요구도 거세다. 당장 해체되지는 않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전경련의 변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결국은 자업자득이다. 전경련은 최순실 사태를 통해 부도덕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청와대 요구에 주요 기업들로부터 774억원을 거두는 ‘수금창구’ 노릇을 했다. 국민들은 전경련의 정경유착 역할에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회원사들로부터는 재계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탈퇴 선언에 해체 요구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대기업 총수들이 ‘전경련 해체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손경식, 구본무, 김승연, 최태원, 이재용, 신동빈, 조양호, 정몽구. 뒷줄 오른쪽 허창수.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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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은 자유시장경제 창달을 목표로 설립된 1961년 이래 산업화 초기 경제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 역할보다는 대기업 옹호에 권력과의 ‘검은 거래’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는 등 위상이 바닥인지 오래다. 최근에는 이념단체 지원 논란도 불거졌다. 오죽하면 주요그룹 총수들이 회장 자리를 고사해 현 허창수 회장이 5년째 맡고 있을 정도다. 역할과 수명이 다했다는 얘기다.
환골탈태해야 한다. 정경유착의 창구라는 검은 그림자를 떨쳐버리고 시대 변화에 맞게 기능과 역할을 새로이 정립해야 한다.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 해체한다면 사회적 손실이 될 수도 있다. 청문회에서 허 회장을 비롯한 6명의 총수가 해체에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발전적 해체도 하나의 방안이다.
그런 점에서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하고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는 LG그룹 구 회장의 제안은 새겨들을 만하다. 회원사들의 중지를 모아 한국 경제의 미래를 연구하는 싱크탱크로 거듭날 길을 모색하기 바란다. 차제에 권력에 빌붙어 기업의 팔목을 비틀어가며 모금책 노릇을 한 관련자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는 등 전횡을 저질러 온 사무국 조직도 일대 혁신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