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실제 속해 있는 것이 소속집단이라면, 속하고 싶어 사고 및 행동양식의 기준으로 삼는 게 준거집단이라고 했다. 이 두 개의 집단이 일치하면 갈등 없이 행복할 수 있지만 대체로 맞아 떨어지기 어렵고 괴리가 크면 클수록 괴로움도 크다고 했던가.
머리는 좋은 데, 아는 것도 많은 데 시험 보는 날 몹쓸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실력발휘 못했다고 투덜댔던 것은 10대 학창 시절 실제 받은 점수와 기대했던 점수대가 달라 괴로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내가 다닐 대학은, 혹은 직장은 저기 문턱 높은 저 곳인데 시험 당일 컨디션이 엉망이어서, 혹은 ‘네 동생들이 줄줄이 사탕이다’라며 옆구리 찌르던 어머니 때문에 선택했던 이쪽 학교와 직장의 차이도 아마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으로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마음은 준거집단에 있어도 늘 소속집단에 굳게 발을 디디고 살아 온 김 부장이었다. 조금 아쉽기는 했어도 지금 속한 집단에서의 자기 역할에 충실했고 그런 스스로를 인정하면서 ‘그래 잘 하는 거야’하고 스스로 어깨도 두드리면서 그렇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그였다.
그런 그가 요즘은 미치도록 괴로워하고 있다. 마음 속에, 아니 머리 속에 있는 스스로의 모습과 실제 자신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살면서 준거집단과 소속집단이 이렇게 다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만큼 실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가 힘겹다는 뜻이다.
늘 그랬다면 기대치가 높지도 않을 테니 이처럼 실망할 리도 없다. 문제는 그가 동반자들 기 콱콱 죽여가며 스트레이트 샷을 날렸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그 모습만 가슴에 남은 김 부장은 요즘 자신의 모습이 미치도록 떨쳐내고 싶었다.
벌써 여러 번 동반라운드를 했던 이 부장은 자꾸만 더 긴 클럽을 잡고 더 왼쪽을 겨냥하라고 한다. 김 부장은 ‘날 뭘로 보고…’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면서 ‘내가 본때를 보여주마’ 다짐을 하지만 어김없이 볼은 마음과 다른 방향으로 한 없이 날아간다. 완벽한 컷 샷이다.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의 완벽한 괴리. 이게 요즘 필드에 서는 김 부장의 모습이다.
보다 못한 이 부장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아 참, 그냥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란 말이야. 그거 어려운 거 나도 알아. 세상에서 젤 어려운 게 내 골프 인정하는 거야. 마음은 타이거 우즈지만 실제는 백돌이인 게 어디 김 부장뿐인 줄 알아. 하지만 인정하지 않고 버티면 버틸수록 더 괴로울 뿐이라고. 그냥 깨끗하게 인정해. 그리고 다시 시작하라고. 겸손하게 말이야. 어디 골프 앞에서 고개를 바짝 쳐들고 난리야?
마지막 말은 농이라는 걸 김 부장도 안다. 이 부장은 같이 골프 시작해 함께 연습하고 고민하고 좋아하고 했던 둘도 없는 골프친구니까. 그가 무너지고 속상해 하는걸 같이 안타까워 해주는 사람이니까…
여전히 김 부장은 자기 골프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지만 안타까워 소리치는 친구를 보면서 마음을 잡는다. 한번 해 볼까…한 클럽 길게 잡고 더 왼쪽을 겨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