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연 연구기관 산업연구원은 5일 ‘경제 안보 시대, 전략산업의 미래와 우리의 대응방안’ 보고서(경희권 신산업실 부연구이원)를 통해 이 같은 정책 제언을 내놨다. 45인의 분야별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반도체와 미래차, 바이오의약품 등 3대 전략산업의 현황과 전망을 담은 정부 용역 연구과제 결과다.
보고서는 반도체를 비롯해 미래차, 바이오의약품 등 한국 주요 산업이 구조적 전환기를 맞았다고 진단했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최신 제품을 개발하고 중국 등 신흥국이 이를 생산하는 글로벌 분업 체계가 붕괴하고 각자도생의 시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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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최근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과반 이상을 점유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입지가 다른 분야의 이익을 일정 부분 보장하는 지렛데 역할을 하는 등 첨단전략산업의 역할이 경제적 가치를 넘어 외교안보상 입지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각국은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대규모 자원을 투입해 우리에 도전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미국 인텔, 삼성전자 등 종합 반도체 기업이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에 진출하며 대만 TSCM의 독점을 위협하고, 애플, 구글, 아마존 등 플랫폼 기업이 팹리스(설계) 시장 진출을 가속하는 등 기술과 수요시장 측면의 변화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도 정부 차원의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최근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기준 6%에서 8%로 높였으나 미국 등 경쟁국이 이를 25%까지 높인 것에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정부도 이를 15%까지 높인다는 목표로 관련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국회 문턱을 넘을진 미지수다. 보고서는 “경쟁국 자원 투입 확대에 맞춰 정부 지원 수준을 고도화해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의 초격차를 유지하는 동시에 팹리스 육성을 통해 파운드리 생태계 경쟁력 열위도 보완해야 한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정부의 관련 지원 확대와 함께 정책 거버넌스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적잖은 자금을 투입한 중장기 사업이 부처 간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해 혼선을 빚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반도체, 미래차, 바이오는 지금까지 국제적인 표준품 양산 능력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으나 앞으론 현존하지 않는 신제품·서비스 개발에 나서야 하는 만큼 정부 차원의 관련 정책 설계도 좀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제언이다. 보고서는 “반도체와 미래차, 바이오뿐 아니라 조선, 철강, 디스플레이, 가전(사물인터넷·IoT) 등 다른 산업도 국제정치와 기술, 시장에 따른 글로벌 지형 재편을 마주하는 중”이라며 “각 분야 정책 수립 과정에서 미래 변화에 대한 전망과 이에 기초한 정책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