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의 월가브리핑]미국 고용 폭발, 직장 잃은 600만명 돌아온다

미 실업자+노동시장 이탈자 분석해보니
팬데믹 탓에 놀고 있는 규모만 약 800만명
BoA 추정…"이탈자 200만명 은퇴 가능성"
올해 빠른 속도로 600만명 직장 돌아올듯
월가 리더들 경고 "고용이 인플레 올린다"
이르면 6월…연준 테이퍼링, 먼얘기 아냐
  • 등록 2021-05-03 오전 7:55:13

    수정 2021-05-03 오전 7:55:13



<미국 뉴욕 현지에서 월가의 핫한 시선을 전해 드립니다. 월가브리핑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의 맥을 짚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요즘 미국 곳곳에서는 ‘NOW HIRING’ 구인 광고 간판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기자는 최근 뉴저지주 롱브랜치 지역의 한 가게에서 핫도그를 먹다가 구인 광고를 낸 건 주인 A씨와 얘기를 나눴는데요. 그 대답은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직원을 빨리 구해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롱브랜치 인근은 뉴저지주 동쪽 해안가로 여름께 관광 수요가 몰립니다. 지금은 물놀이 하기에 이르니 일부 서핑 마니아만 드나들고 있지만, 올해 여름이면 코로나19가 완화하면서 해변이 북새통을 이룰 겁니다. A씨가 구인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지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구인 광고를 보고 곧바로 취직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그는 급여를 올려줘야 하는지 고민까지 하더군요.

미국 내 800만명, 아직 놀고 있다

요즘 월가에서 가장 주목하는 지표는 고용과 물가입니다. 뻔히 예고돼 있는 연방준비제도(Fed)의 돈줄 죄기, 다시 말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시행과 기준금리 인상의 시기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준은 그 중 고용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미국 노동시장 상황부터 살펴보지요. 한국의 경제활동인구 개념인 노동력인구(labor force) 규모는 지난 3월 기준 1억6000만명 남짓입니다. 그 가운데 취업자가 아닌 실업자는 970만명을 약간 넘고요. 그래서 현재 실업률은 6.0% 수준입니다. (한 나라의 노동가능인구는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로 나뉘고, 경제활동인구는 다시 취업자와 실업자로 나뉩니다.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비경제활동인구는 육아, 가사 등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팬데믹 이전인 지난해 2월은 역사상 최고의 일자리 호황 시기였는데요. 당시 1억6400만명 이상 노동력 인구 가운데 실업자는 570만명 정도였습니다. 실업률은 3.5%였고, ‘완전 고용’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말하는 슬랙(slack·완전 고용과 현재 고용 수준의 차이)을 메우려면 △코로나19 이후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비(非)경제활동인구 400만명 이상(1억6400만명-1억6000만명)이 일자리를 다시 찾고 △팬데믹 영향에 실업 상태인 노동자 400만명 가량(970만명-570만명)이 취업해야 한다는 계산이 가능합니다. 800만명이 훌쩍 넘습니다.

코로나19가 최악이었던 지난해 4월로 돌아가 보지요. 불과 두 달 전인 2월과 비교해 추가로 늘어난 비경제활동인구와 실업자는 2500만명이 넘었습니다. 그 중 지금까지 800만명은 여전히 놀고 있는 겁니다. 파월 의장이 “(노동시장 회복까지) 갈 길이 멀다”고 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오는 7일 미국의 4월 고용보고서에서 신규 비농업 일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슬랙을 메우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월가에서 관심이 매우 큽니다.

이던 해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글로벌경제연구소장이 내놓은 미국 내 노동력 인구(labor force·한국의 경제활동인구) 이탈자 추정치. (출처=뱅크오브아메리카)


직장 잃은 600만명, 시장에 쏟아진다

기자는 최근 이던 해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글로벌경제연구소장의 연구를 흥미롭게 봤습니다. BoA의 리서치팀을 이끄는 해리스 소장이 추정한, 코로나19 탓에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이는 현재 약 460만명입니다. 실업자는 취직 의향이 있기 때문에 경제가 살아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육아, 가사, 노화 등으로 일을 그만 둔 이들이 취직할 가능성은 그보다 낮겠지요.

해리스 소장은 “공식 실업자 970만명 외에 이들 460만명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 언제 일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460만명 중 절반 이상, 즉 250만명은 늦어도 올해 말까지 노동시장에 돌아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육아 문제로 일을 그만뒀습니다. 그런데 백신 접종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가을부터 학교가 문을 열면 보육의 필요성이 줄어들 겁니다. 삶이 정상으로 돌아감에 따라 근로자들은 일자리로 갈 겁니다.” 해리스 소장의 말입니다.

그가 더 주목하는 건 나머지 200여만명입니다. 그는 “이들은 노동시장 복귀가 더 늦어지거나 아니면 (영구적으로) 이탈해 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부연합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120만명 이상이 추가로 은퇴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65세 이상 퇴직 근로자들은 이번 팬데믹으로 (일과 건강 중에서) 인생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하게 됐을 겁니다. 게다가 과거 경기 침체는 자산가치 붕괴를 동반했는데, 이번에는 증시가 사상 최고치로 급등하고 있고 집값은 두자릿수 이상 뛰고 있습니다. 퇴직자들이 급증하는 건 노동력 규모가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해리스 소장이 결국 방점을 찍는 건 노동시장의 수요-공급 불일치입니다. 일할 사람을 찾는 곳은 급격하게 많아지는데, 일하겠다는 사람은 이에 못 미칠 수 있다는 겁니다. 각종 소비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는 건 이견이 없습니다. 컨퍼런스보드에 따르면 4월 소비자신뢰지수는 121.7로 지난해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문제는 일할 사람이 부족할 수 있다는 게 해리스 소장의 지적이지요. 그는 “(노동시장의 수요-공급 불일치는) 특정 분야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기자가 롱브랜치 지역에서 만났던 A씨의 고민과 결국 같은 겁니다.

최근 5년 미국의 월별 실업자 수 추이. (출처=미국 노동부)
최근 5년 미국의 월별 실업률 추이. (출처=미국 노동부)
최근 5년 미국의 월별 노동력 인구(labor force·한국의 경제활동인구) 추이. (출처=미국 노동부)
최근 5년 미국의 월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 추이. (출처=미국 노동부)


월가 리더들 “고용이 인플레 올린다”

중요한 건 이같은 노동시장 현실이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입니다. 이는 곧 월가에서 불거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논쟁의 핵심입니다.

해리스 소장의 분석대로라면 800만명 중 적어도 600만명은 올해 안에 일자리를 찾을 겁니다. 7일 나오는 고용보고서에서 4월 수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우존스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4월 신규 비농업 부문 고용이 97만8000명 증가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월(91만6000명)보다 확대된다는 겁니다. 모건스탠리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각각 125만명, 120만명 증가를 내다보고 있고요. 심지어 200만명 이상(제퍼리스·210만명)을 내놓은 곳도 있습니다.

4월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미국이 집단 면역을 달성하고 휴가철 여행 수요가 늘면, 고용시장은 더 뜨거워질 겁니다. 5월 신규 고용을 300만명 이상으로 보는 관측까지 나와있습니다. 이르면 올해 가을께 팬데믹 이전에 버금가는 완전 고용이 가능할 것으로 월가는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근로자가 고용주보다 ‘갑’인 아이러니한 현실 때문에 팬데믹 이전보다 높은 월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임금 인상은 원자재가 상승과 함께 대표적인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 요소로 꼽힙니다.

그래서 월가 리더들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심상치 않다는데 수렴하고 있습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우리는 상당한 인플레이션을 보고 있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고요.

‘월가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경제가 뜨겁게 성장하는 경우와 적정한 성장세를 유지하는 경우인데요. 그는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이 일어난다면 올해 2.7%, 내년 3%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10년물 국채금리는 6%대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국채금리가 6%까지 오른다면 그간 가파르게 오른 성장주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자명합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한 레이 달리오는 “경기가 급속히 반등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거세졌다”며 “우리는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2.6%입니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보니 이미 연준 목표치(2.0%)를 넘었습니다. 같은달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의 경우 2.3% 올랐습니다. 수백만명이 다시 일을 시작하고 돈을 쓴다면, 이 숫자는 더 커질 겁니다. 월가 리더들과 경제 석학들이 하는 경고가 바로 이겁니다.

물론 반론 역시 있습니다. 포브스는 “인플레이션 공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최근 보도했습니다. 지난 24년간 연평균 근원물가(CPI에서 식료품과 에너지 품목을 제외한 것) 상승률은 2.05%에 불과했고요. 지난 10년간은 1.85%였습니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무슨 인플레이션이냐는 겁니다. 포브스는 지난 10여년간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배런스,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주요 매체들의 인플레이션 경고를 담은 헤드라인을 소개했고요. 이번 공포도 과거와 같은 ‘틀린 경고음’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전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파월 의장은 “고용시장 슬랙이 있어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일시적으로 물가가 오를 수 있지만, 잠깐 반짝한 후 잠잠해질 것이라는 것이지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비슷한 생각입니다. 완전 고용 수준의 호황이었던 지난해 2월 CPI 상승률은 2.3%에 불과했습니다.

(출처=포브스)


연준 테이퍼링, 더이상 먼 얘기 아니다

이제 정리해볼까요. 미국 경제가 폭발하고 있고 적어도 약 600만명은 새로 직장을 구할 것이라는데 이견은 많지 않습니다. 노동시장에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추후 몇 달간 이어질 일자리 폭발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의견이 다소 갈립니다.

파월 의장은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기자회견에서 냉혈한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국 경제의 상당한 추가 진전(substantial further progress)을 두고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말만 듣고 보면 연준이 긴축으로 돌아서는 건 한참 먼 얘기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4월 신규 고용이 100만명 이상 나와주고, 이후 이런 흐름이 공고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고용시장이 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자는 보고 있습니다. 파월 의장이 선을 그었던 테이퍼링의 힌트가 6월부터 나올 수 있습니다.

씨티그룹은 “연준은 6월 FOMC까지 테이퍼링과 관련한 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고, 모건스탠리는 “7월께 테이퍼링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연준은 팬데믹 국면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돈을 풀었습니다. 파월 의장조차 초완화정책 통화정책이 증시 초호황에 영향이 있었다고 직접 말했을 정도니까요. 연준이 돈줄의 방향을 바꾸면 세계 각국은 엄청난 영향을 받을 겁니다. 이제 연준의 테이퍼링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개최한 연례 주주총회에서 “우리는 상당한 인플레이션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AF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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