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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뉴욕주 북부의 작은 도시 이타카(Ithaca). 이곳은 요즘 ‘월세 쇼크’를 둘러싼 갈등으로 지역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자리를 잃은 세입자들이 월세 거부(cancel rent) 운동을 벌이면서 집주인들과 충돌하고 있다.
이타카 세입자연합회는 요즘 집주인의 퇴거(eviction) 소송을 막기 위해 시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회 활동가인 지니에브 랜드씨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중에는 세입자들이 집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서로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언론에 소개된 랜드씨의 사연은 이렇다. 세 들어 사는 그는 코로나19가 닥친 지난 3월 직장을 잃었고, 임대 기간이 만료됐지만 집세를 완납하지 못했다. 다음달 초까지 연장한 뉴욕주의 강제 퇴거 금지 행정명령 효력이 종료하면, 그는 노숙자 신세로 전락할 처지다. 랜드씨는 “코로나19 경제 붕괴가 이어진다면 미국은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코로나19 팬데믹발(發) ‘주택대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가구 3곳 중 1곳은 월세나 대출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한 고리’ 서민층부터 실물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 충격에 월세뿐인 임대차 제도 허점
22일(현지시간) 온라인 주택임대 사이트 아파트먼트 리스트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세입자와 집주인 가구를 통틀어 32%는 주거비용을 내지 못했다. 세입자의 경우 월세이고 집주인의 경우 대출 원리금이다. 한 달 전보다 2%포인트 상승했다.
미국인 전세가 없고 월세밖에 없다. 세입자가 겪는 충격파가 더 큰 이유다.
가구 수로 따지면 4000만가구 정도다. 지난달 월세를 제때 못 낸 가구가 1000만~1500만가구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파트먼트 리스트 관계자는 “미국 경제를 재가동했음에도 월세 미납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든 오플래허티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미국의 노숙자는 지난해보다 40~45% 급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특히 미국의 월세는 한 달 벌어 한 달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높다. 부동산 조사업체 포춘빌더스에 따르면 뉴욕주 뉴욕의 월 평균 주택 임대료는 3000달러(약 360만원)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3500달러로 더 높다.
이는 경제가 괜찮을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미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6만달러가 넘는다. 한국의 2배 정도 된다. 게다가 미국의 실업률은 올해 2월까지 3% 중반대로 완전고용 수준이었다. 여유있게 저축할 정도는 아니지만 집세 내고 생활비 쓰며 그럭저럭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월세 충격이 가시화한 건 4월 이후부터다. 4월부터 월 실업률이 14.7%→13.3%→11.1%→10.2%에 달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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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발 연구기관인 어번 인스티튜트의 사만다 배코 선임연구원은 “경기 침체를 그냥 내버려두면 매우 많은 임차인들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집주인이라고 안전지대는 아니다. 특히 정부 보증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집을 산 서민층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미국 모기지은행연합회(MBA)에 따르면 2분기 연방주택관리국(FHA) 주담대 연체율은 15.65%까지 올랐다. 1979년 통계를 낸 이래 40여년 만의 최고치다.
FHA 대출은 일반 시중은행 혹은 모기지 업체가 취급하는 대출보다 진입장벽이 낮다. 집값의 3.5%를 미리 계약금(down payment)으로 내면 신용이 낮아도 대출 받을 수 있어서다. 주로 중위소득 아래 서민층, 특히 생애 처음 내 집을 마련하려는 구매자들이 주요 고객이다. 이같은 FHA 대출자 6명 중 1명이 2분기 들어 원리금을 갚지 못했다는 건 코로나19 충격파가 경제를 밑바닥부터 흔들고 있다는 방증이다.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자산가라고 해서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는 아니다. 미국은 한국보다 보유세가 높다. 월세를 받아 세금을 내야 하는데, 월세 거부 운동이 확산할 경우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각 주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세입자 강제 퇴거 금지가 끝난다고 해도 집주인에게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경기가 좋지 않은 만큼 대체할 세입자를 구하는 게 어려울 수 있는 탓이다.
오플래허티 교수는 “집주인들이 (많은 비용을 치르며) 퇴거 소송을 걸 것 같지 않다”며 “다른 잠재적인 세입자들 역시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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