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에 울려퍼진 가야금 선율

  • 등록 2012-02-13 오전 9:01:14

    수정 2012-02-13 오전 9:01:14

[이데일리 김정숙 칼럼니스트] 해인사를 다녀왔다. 주지 스님의 간곡한 부탁이 있어 마련된 초청 공연이었다. 지금까지 딱히 큰 무대만 고집한 것은 아니지만, 해인사 공연은 난생 처음 접하는 작은 규모였다.

돌이켜보면, 인간 문화재였던 선친의 명성에 기대어 어렸을 적부터 그럴싸한 무대만 선택했던 게 아닌가 싶다. 늦게나마 철이 들었을까. 지금은 관객이 있고 초대만 있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무대를 찾곤 한다.

해인사는 한국 화엄종의 총화인 동시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 문화유산 팔만대장경(기록 유산), 장경판전(문화 유산)과 국보, 보물 70여점이 있는 곳이다. 고려때 제작된 팔만대장경이 있는 까닭에 법보 종찰이기도 하다.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 이정 스님이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창건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살아있는 천년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사찰이다. 흥분을 애써 감추려 했지만 뛰는 가슴만은 어쩔 수 없었다.

해인사는 지난해 220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유치하며 국보급 축제로 자리매김한 ‘대장경 천년 세계 문화 축전’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일궈냈다. 해인사의 역사는 이토록 매순간 새롭게 쓰여지는 게 아닐까. 대장경으로 쓰여진 역사는 스님들의 노력으로 또다시 쓰여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초입에 들어서니 곧바로 적막감이 밀려든다. 잘 정돈된 공원같은 곳이다. 오른편으로 부도탑들이 보이더니 곧이어 1200여년만에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 선원이 펼쳐졌다. ‘이곳은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오니 출입을 금함’이라고 적힌 종이 뒤로 해인사 선원의 대문이 활짝 열린 채 녹야 국악관현악단 일행을 반겨 주었다.

선원은 성철, 청담, 법정 등 수많은 큰스님이 수행했던 곳으로 그 공간 또한 웅장하고 비범한 기운이 느껴졌다. 또 한쪽벽 중앙에 달마 대사가 소리없이 웃고 있었다. 새해 들어 받은 가장 큰 선물일 성 싶었다.

해인사 공연은 큰 스님 몇분만 겨우 모신 어려운 자리였다. 예전 같으면 공연을 잘하려는 마음만 가득해 재미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즐거우니 스님들도 장단을 맞추고 즐거워했다.

국악은 본디 불교 음악에서 출발했다. 염불과 마음 공부로 중무장한 큰스님들 앞이었지만 공연은 한껏 즐거웠다. 추임새를 넣는 스님, 손장단과 북장단에 춤추며 노래까지 곁들이는 스님이 있었다.

공연을 하는 이들이나 이를 지켜보는 이들이나 한결같이 음악에 빠져들었다. 국악은 역시 한민족을 하나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공연을 마친 녹야 국악관현악단 일행은 해인사 고찰에서 쉴 수 있었다. 천년의 역사 안에 우리가 녹아들어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사찰은 의식주 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건축, 예절 등 우리 고유의 문화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어쩌면 우리 민족이 추구하는 자연친화적인 삶 그 자체가 아닐까. 때문에 우리 민족의 근간을 이루는 끈질긴 생명력이 불교에서 나왔다는 말이 괜스레 설득력있게 들렸다.

우리 인류가 과거부터 만든 모든 삶의 방식과 지금 존재하는 삶이 문화재요, 우리의 모든 순간 또한 살아있는 역사로 보고싶다. 우리의 전통 문화는 과거가 아니고 현재이며 미래인 것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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