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26일 강원도 설악산의 한 호텔에서 개최된 열린우리당 당선자 워크숍에서는 향후 정책 노선을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정동영 당 의장, 임채정 의원, 강봉균 의원 등 당 지도부 및 중진 의원들은 실용주의적 노선을 주장한 반면, 초선 당선자들은 좀더 선명한 개혁 노선을 주장했다. 여권 내 노선 차이는 과거 중국에서 있었던 ‘홍(紅·개혁노선)’ ‘전(專·실용노선)’ 논쟁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실용파 專 "이념에 빠지면 경제는 안돼…"
정동영 의장=열린우리당에는 진보적 보수와 개혁적 진보세력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이념을 포괄하고 통합해 나갈 것이다. 4·15 총선의 과반수 승리는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을 하라는 국민의 뜻이 담겨있다. 동시에 어려운 민생을 살펴달라는 의미도 있다. 그동안은 소수 야당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보다 확실한 여당마인드를 갖고 무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들이 우리 152명의 당선자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한없이 겸손하자. 무한히 자세를 낮추고 투명한 유리관 속에 들어가 있다고 24시간 행동하고 한발 한발 나가자.
임채정 의원=열린우리당을 잡탕이라고 하는데 외국의 정당들도 잡탕이다. 그런 정당이 오히려 효율적이고 실용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폭넓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당의 정체성은 서민과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 개혁적 중도주의로 명명할 수 있지 않나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당이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획득하고 안정감을 주느냐하는 것이다. 굉장히 중요한 점이다. 모든 국민이 우리를 주시하고 기대하고 약간 의심하기도 한다.
강봉균 의원=우리당이 앞으로 실용적이면서 실천적인 노선을 설정해서 적어도 국민 중에 60% 정도는 확실하게 우리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만들고, 심증적 지지자가 70%선까지 될 수 있도록 대선까지 끌고 갈 것인지가 우리의 과제라고 본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는 이견이 있어선 안된다. 이러저런 유혹이 있겠지만 이를 거부해선 안된다.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 이상의 복지는 없다. 성장론자 아니냐, 쉽게 경제를 풀려는 것 아니냐, 구조적 개혁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으나, 노무현 정부도 구조적인데 치우치다 보니 경제를 어렵게 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경제에 있어선 이념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병문 당선자=노무현 정부 정책에 혼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열린우리당 이름으로 피부에 닿을 만큼 일한 게 없다. 그럼에도 과반수 지지를 얻은 것은 개혁을 하라는 것이라고 본다. 152석의 의석을 준 것은 겸손하라는 의미다. 숫적 우위로 가면 안되고, 설득과 합의에 힘써야 한다.
조경태 당선자=과반수 의석을 준 것은 국정을 안정시키고 민생을 안정시키라는 뜻으로 본다. 개혁 속도와 방법도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국민에 대한 신뢰가 저변에 깔려야 한다. 상생의 정치를 펼쳐 나가야 한다. 생산적인 국회를 만들기 위해 여야대표가 정례적으로 만나서 회담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본다.
개혁파 紅 "중도로 가면 野와 뭐가 다른가"
임종인 당선자=이번 총선의 의미는 선거혁명이다. 사회·경제면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35% 한나라당 지지자는 탄핵 잘못이지만 열린우리당은 안 찍어주겠다는 것 아닌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상위에서 하위까지 어느 계층의 이해를 대변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송영길 의원=민생과 개혁이 대립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진정한 개혁이 진정한 민생경제다. 성장과 분배도 마찬가지로 이 사회에 적절하게 기여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성장이 될 것이다. 독점 재벌의 폐해도 겪은 만큼 유착구조를 없애고, 정경유착을 단절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혁신적인 기업가들을 격려하는 정책이 돼야 한다. 애매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개혁세력으로서 우리의 지지세력을 결집해야 한다.
유시민 의원=특정한 이념으로 묶을 순 없어도 정당이 어떤 이념을 지향하는지는 중요하다. 집권당의 힘을 가지고 뭘 실현할지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중도 자유주의 정당이고, 나 개인은 중도좌파, 자유주의 좌파라고 본다.
정청래 당선자=오늘 자주외교의 문제, 대미외교에 대한 문제가 전혀 언급이 없었고, 언론개혁에 대한 말도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입장을 말해 줬으면 한다. 이념 정당을 지양하자고 하는데 과연 이념이 나쁜 것인가. 지금까지 색깔로 폄하됐지만 우리가 이념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이미경 당선자=워낙 신중하게 발제하다 보니 날카로움이 떨어졌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민주화 이런 말은 한나라당이나 민노당도 할 수 있다. 우리가 확보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가 나와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당·정 협의에선 아주 구체적으로 정부에 요구할 것도 미리미리 만들어야 한다. 부안 핵폐기장, 평택 미군기지 이전, 이라크 파병문제 등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이 모여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정장선 의원=당의 정체성에 대해 중도개혁 내지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른다고 하는데 역대 정권도 그렇게 말했고,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실제적으로 한나라당과의 차이가 뭐냐고 하면 말할 것이 없다. 이번에는 분명한 경제정책이 있어야 한다.
김원웅 의원=16대 국회까지는 개혁세력이 지역당에 셋방살이했는데 이제 개혁세력이 집권했다. 이해찬 의원이 ‘개인 의견 밝히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하는데 의미는 잘 이해하지만 기존의 권위주의적 정당에서 하는 말과 비슷하다. 그런 데 관심을 갖는 당 지도부가 되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