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조효제 부이사장]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국제유가의 가격 변동성은 연일 확대되는 추세다. 소수 정유사가 과점하는 국내 석유시장의 특성상 가격변동성 완화 및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유통시장의 투명성 강화와 정보비대칭 해소는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유일의 석유제품 현물 전자상거래시장인 ‘KRX 석유시장’의 개장 10주년이 갖는 의미는 크다. 특히, 석유시장을 통해 석유거래 체결가격이 대중에 투명하게 공개됨으로써 일반 소비자가 직접 정유사 판매가의 적정성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변화이다. KRX 석유시장은 2012년 개장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해 현재 내수 소비량의 15%에 이르며, 거래대금도 8조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이제는 그 효과와 향후 과제를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KRX석유시장은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서 정한 저유시설 등을 갖춘 정유사, 수입사, 대리점, 주유소 등 석유사업자가 참여하는 시장으로 현재 약 2000개사가 석유제품을 주식처럼 거래하고 있다. 또한, 정부 정책시장으로서 시장참여자에 인센티브 혜택이 부여되며, 대표적으로 매도자에게 수입부과금 환급, 매수자에게는 법인(소득)세 공제 등이 제공된다. 덕분에 작년 기준 석유제품이 장외 가격보다 약 3%(ℓ당 약 40원) 저렴하게 거래됐으며, 이러한 가격 인하 효과는 일반 국민에게도 혜택으로 돌아가고 있다.
실제 2017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정부 수탁과제보고서에서는 KRX석유시장을 통해 직ㆍ간접적으로 휘발유 및 경유를 저렴하게 매입한 주유소들은 소매판매가격을 낮게 책정한 것이 확인됐다. 아울러 인근 주유소에도 판매가격을 인하시키는 가격경쟁 파급효과를 미쳐 전체 소비자 지출이 절감되는 등 경제적 순효과가 연평균 1205억원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은 긍정적 신호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소기의 성과에도 아직 시장이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 고도로 자본집약적인 석유산업 특성상 여전히 소수 생산자가 과점시장을 형성해 소비자가 만나는 가치 사슬의 마지막 단계인 주유소의 구매가격 결정과 유통방식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주유소의 구매처 선택권을 제한하는 형태로 귀결되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정유사 상표 주유소는 KRX석유시장의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시장의 메커니즘을 활용한 유가안정을 위해 KRX석유시장은 다음 두 가지 과제에 집중하고 있다.
먼저 현재보다 더욱 많은 참가자가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가자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판매경쟁 여건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거래소는 올해부터 기존 정부 인센티브 혜택과 별도로 자체 인센티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수입사 및 대리점은 정유사보다 영세하여 매도량이 저조하다. 따라서 이들의 거래를 활성화시키고자 주유소에게 매도하는 경우에 수수료 면제 등 차별화된 혜택을 부여하여 참여를 유인하는 것이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주유소의 혼합판매 양성화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정유사 상표 주유소는 해당 정유사와의 전량구매계약 관행과 법적인 상표 표시의무 제약으로 저렴하게 석유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다른 창구를 합법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이러한 제약이 해소되어 다른 공급자의 석유제품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다면 시장 원리대로 공급자 간 가격경쟁이 촉발되어 시중 판매가격도 자연스럽게 인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시장기능을 강조하는 새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KRX석유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과감한 규제완화와 유인책을 정부 및 업계와 함께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
최근 2~3년간 국민은 코로나19로 인한 생활고에 더해 물가 불안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석유는 다양한 산업재의 기초재료로서 유가안정이 곧 물가안정의 핵심이 된다. KRX석유시장의 노력에 많은 관심과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