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이 공시방] 이유 없는 빚은 없다

에이치엘비, 600억원 규모 단기차입금 증가 결정
앞서 유·무상증자 통해 사업 확장 계획 확인
주가 흐름도 선방… 무조건적인 악재는 아닐 수 있어
  • 등록 2020-04-11 오전 8:10:00

    수정 2020-04-13 오전 7:45:42

[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이제 막 주식투자를 시작한 ‘주린이(주식+어린이)’라면 ‘이 종목 뜬다더라’는 지라시보다 기업 스스로 공개한 진짜 정보에 관심을 갖는 건 어떨까요. 한 주간 눈에 띈 공시를 통해 기업 펀더멘털(기초체력)에 한 발 다가가 봅시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8일 에이치엘비(028300)는 ‘단기차입금 증가 결정’이라는 이름의 공시를 냈습니다. 단기차입금이란 말 그대로 ‘짧은 기간 빌리는 금액’으로 1년이내 갚아야할 돈입니다. 기업이 영업활동을 하면서 돈을 빌리기도 하고 갚기도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발생한 차입금인지’가 됩니다. 왜 빌렸는지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죠.

에이치엘비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총 600억원 규모, 자기자본 대비 28.4%에 해당하는 돈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차입 목적은 ‘타법인주식취득을 위한 자금 확보’, 즉 다른 회사의 주식을 사기 위해서 600억원이라는 큰 돈을 일정부분 이자를 부담하며 빠르게 마련했습니다.

돈을 빌려주는 쪽은 통상 원금에 대한 이자와 함께 담보를 요청합니다. 상대방이 돈을 갚지 않을 경우에 대신 팔 수 있는 유가증권, 부동산 등이 대상이죠. 금융기관의 경우 담보없이 돈을 빌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에 따라 에이치엘비는 보유한 관계사 에이치엘비생명과학(067630)의 주식 870만주를 담보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차입기간은 4월 10일부터 오는 7월 27일까지 약 3개월로 아주 짧습니다.

갑자기 600억원이라는 돈을 빌린다고 하니 회사가 돈이 없는 게 아닐까 싶지만 공시를 더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회사는 다른 회사의 주식을 얻기 위해 돈을 빌린다고 명시해놨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에이치엘비의 공시를 좀 더 들여다 보면 됩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에이치엘비는 지난달 3일 약 3200억원 규모의 유·무상증자에 나서며 자금 조달에 나섰습니다. 기존 발행주식 총수의 10%에 해당하는 자본확충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때문일까요?

당시 회사가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보유중인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 관련 사업의 확장이 주요한 목적입니다. 증자 금액의 60%에 해당하는 2360억원은 이 회사가 지난해 11월 편입한 자회사 엘레바와의 합병에 사용된다고 기재돼있습니다.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판매를 맡은 엘레바의 자회사 편입을 완료하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글로벌 사업 추진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즉 ‘큰 일’을 앞두고 발을 넓히려 한다는 추측이 가능하죠.

에이치엘비의 최근 공시를 들여다보면 또다른 회사의 지분 취득도 결정했습니다. 바로 미국의 면역 치료제 개발업체 이뮤노믹 테라퓨틱스입니다. 에이치엘비는 이뮤노믹 테라퓨틱스 지분 38.16%를 약 360억원에 취득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유상증자로 큰 회사의 그림을 그렸고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추진 중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 회사 관계자는 10일 이에 대해 “이뮤노믹 테라퓨틱스 인수 관련 대금 납부 기한이 오는 30일로 유상증자 납입 완료일보다 앞섰기 때문에 단기차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업 확장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투자자들을 설득시킨 것인지, 주가도 큰 폭으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공시가 나온 다음 날인 9일에는 전날에 비해 1.22%(1200원) 올랐고, 10일에는 소폭 떨어졌지만 증자를 결정한 시점보다 주가는 높은 상태입니다.

단순히 차입금이 늘었다고 해서 악재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영업활동을 하다보면 돈을 빌릴 수도, 갚을 수도 있는 상황이 많으니까요. 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 사업이 어떤 상태인지, 무엇때문에 돈을 빌린 것인지, 실제 기업가치 향상으로 이어질 지 등입니다.

단기차입금 증가 공시나 타법인 주식취득 공시에선 회사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검색창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치면 나오는 사이트에서 상장사 이름을 넣고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주식을 얼마에 살까 고민하기 전에 관심있는 기업이 밝히는 ‘공시’를 먼저 훑어본다면 승률이 조금은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주린이들의 성투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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