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은 몇십 년 간 듣고 살면서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잖아요. 그런데 '여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은 그 주어가 소년이 여자로 바뀌었을 뿐인데 왜 논란거리가 되어야 하죠?”
페미니즘이 최근 들어서도 강력한 화두가 되고 있다. 작년 2월 한 아이돌 걸그룹 멤버가 ‘GIRLS CAN DO ANYTHING’(소녀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이라고 적힌 휴대폰 케이스가 나온 사진을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해 논란이 된 뒤 일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페미니즘은 뜨거운 감자다. 여자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왜 위협적으로 들리고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박자람·홍은표 표람 프로젝트 공동대표는 이같은 궁금증에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두 대표는 모두가 함께 입을 수 있는 ‘GIRLS CAN BE ANYTHING’(소녀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이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와 맨투맨 셔츠를 제작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모금을 받아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뤄냈다. 스냅타임이 그 프로젝트의 공동대표 중 한 사람인 박 대표를 만나 이 프로젝트의 의미와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이 옷을 입는 사람들이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표람 프로젝트는 공동대표들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만든 프로젝트였다. 홍은표 대표는 디자인을 총괄했고, 박자람 대표는 기획·구성·배송·운영 등을 총괄했다. 2018년 3월 티셔츠를 제작해, 700만원 목표액에 160% 초과한 약 1100만원이 모였다. 비전문가 두 명이 시작해 힘든 점도 많았다. 하지만 박 대표는 이 논란에 분노하는 모든 분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이 문구를 좀 더 많은 사람이 보고, 이 옷을 입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티셔츠의 문구를 기존에 논란이 된 ‘GIRLS CAN DO ANYTHING’에서 ‘GIRLS CAN BE ANYTHING’으로 확장한 이유에 대해 무엇인가 하려고 하지 않아도 여자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휴대폰 케이스를 제작한 업체는 다른 곳이지만, Do는 하는 것이고, Be는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딱히 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더욱 넓은 의미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여성도 사람으로 동등한 권리 누리길 바라는 게 페미니즘”
박 대표는 공동 대표 둘 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페미니스트란 일부 사람들의 우려처럼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라, 여성도 사람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를 바라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릴 때부터 가정, 학교, 사회 등에서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성차별을 겪었다”며 그럴 때마다 화가 났고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마땅히 그 부당함에 대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몰랐다고 했다.
페미니즘 개념을 접하고 꾸준히 공부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무렵부터다. 그는 "당시 학교 선생님을 통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며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통해 그간 살며 느껴왔던 부당함을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즘은 왜 상업적이면 안 되죠?”
이어 “오히려 페미니즘이 적극적으로 소비되어 노출됨으로써 페미니즘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문화의 한 형태로 형성되어야 한다”라고 박 대표는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표람 프로젝트의 티셔츠는 페미니스트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소비할 수 있게 보편화한 문구를 담았고 좋은 품질의 티셔츠를 제공하려 노력했다”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이러한 현상이 페미니즘이 대세가 되고, 큰 물결을 이룰 수 있게 할 것이다”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저는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어요”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박 대표의 소망이다. 그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들을 ‘여성’이라는 단어에 가두고 ‘2등 국민’처럼 대우하고 있다”며 “신문 기사에서 대상이 여성일 경우만 여성임을 표기하고, 항상 여경찰·여배우·여의사·여교사 등 남성이 기본이 되고 여성은 부차적인 존재처럼 표기되는 것이 한 예이다”라고 말했다. 또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아직도 여성들은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여성을 2등 국민으로 보고 있는 증거다”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박 대표는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사회가 바뀌어 가는 발전과정에서는 언제든지 그것에 대한 저항, 소위 말하는 '백래시(Backlash·반동)'가 있었습니다. 최근에도 일부 극단적인 사례들로 낙인을 찍는 등 페미니즘에 대한 저항이 거센 것처럼요. 그래도 전 앞으로도 여성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될 것이고요.” /스냅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