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드루킹 댓글조작사건' 경찰엔 위기이자 기회

  • 등록 2018-04-20 오전 6:00:00

    수정 2018-04-20 오전 6:00:00

[이데일리 신상건 기자] 인터넷 논객 ‘드루킹’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1월에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결정을 비판하는 댓글로 시작된 이 사건은 ‘친문핵심’ 김경수 의원의 배후 의혹설까지 나오며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3월 21일 드루킹 김동원(49)씨와 공범 2명을 체포했을 때 이들이 저지른 댓글 조작 의혹만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의원의 배후 의혹과 관련해서도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16일 오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김씨가 일방적으로 문자를 보낸 것”이라며 “김 의원은 거의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의 일방적인 행동으로 김 의원과 김씨는 단순한 지지자 관계 이상은 아니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김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이 끝내고 (김씨가) 오사카 총영사로 한 분을 추천했다”며 “이를 청와대 인사수석실로 전달했다. 어렵다고 연락받아 (김씨에게) 전달했다”며 김씨와 관계가 단순하지 않았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했다. 그동안의 경찰 수사 내용이 부실했다는 것을 김 의원이 확인해준 셈이다.

야권 인사들이 “부실 수사”라며 강하게 몰아붙이자 경찰은 다음 날 수사 인력을 충원해 김씨의 자금 출처와 배후 유무까지 수사를 확대했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역력하다. 경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이유 중 하나는 경찰의 숙원인 검경 수사권 조정이 걸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1961년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검찰이 형사절차상 모든 권한(재판권 제외)을 독점하는 수사권 체계를 유지해왔다. 정부가 수사권 조정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그 어느 때보다 경찰의 숙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정부가 조정안을 내놓더라도 국회 논의를 통해 법률로 정하는 만큼 사실상 키는 국회가 쥐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될 수 있으면 정치권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바로 국민이다. 수사권 조정은 범죄 척결과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서지 경찰의 권한 확대나 검찰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다. 댓글 조작 사건은 오히려 경찰에게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 경찰이 권력과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사건을 철저히 수사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경찰의 위상과 발언권도 높아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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