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장갑 대신 엄지장갑 어때요?"

원종건씨, 시각장애 어머니 눈 뜨자 장애인 돕는 삶 꿈꿔
"벙어리장갑은 장애인 비하 표현" 엄지장갑 캠페인 시작
대학 친구들과 공익사업체 '설리번' 결성해 장갑판매
"소통 장애인 문제 알리고 싶어"
  • 등록 2016-12-29 오전 6:30:00

    수정 2016-12-29 오전 6:30:00

‘설리번(Sullivan)’이란 팀을 결성해 지난달 25일부터 다음(Daum) ‘스토리펀딩’에서 ‘엄지장갑 프로젝트’란 이름의 스토리 펀딩을 진행 중인 (왼쪽부터) 원종건(24·경희대 언론정보학과 졸업)씨와 김가현(23·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년)씨, 박힘찬(23·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년)씨가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엄지장갑’을 손에 착용해 들어 보이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보영 기자)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심장에 구멍이 뚫린 채 태어난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은 태어나자마자 스웨덴으로 입양 보내졌다. 아버지는 이듬해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시각 및 청각 장애를 지닌 어머니와 13살 소년만 남았다. 지난 2005년 MBC의 공익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눈을 떠요’에 소개된 사연이다.

어머니 박진숙(당시 43세) 씨는 방송 이후 후원자들의 도움 덕에 각막 수술을 받고 눈을 떴다. 그녀가 아들에게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우리도 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였다고 한다. 10년 뒤 청년이 된 이 소년은 장애인 차별문제 해결에 팔 걷고 나섰다.

이베이코리아 신입사원인 원종건(24)씨는 대학 친구들과 함께 최근 어머니처럼 장애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기 위한 첫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른바 ‘엄지장갑 캠페인’이다.

‘벙어리장갑’ 대신 ‘엄지장갑’이란 말을 사용하자는 게 이 캠페인의 골자다. 원씨는 “벙어리는 언어 및 청각 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라며 “비하 표현이 담긴 벙어리장갑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상에 만연한 장애인 차별을 확산시키는 것은 아닐까란 문제의식에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했다.

2년 전부터 대체표현을 고민해온 원씨는 장갑 모양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한곳에 뭉친 네손가락과 떨어진 엄지 부분이 소외된 장애인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지장갑’이란 명칭은 그렇게 탄생했다.

원씨는 친구 4명과 함께 지난 9월 엄지장갑을 만들어 판매하는 ‘설리번’(Sullivan)이라는 공익 사업체를 설립했다. 설리번 대표인 박힘찬(23·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년)씨는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을 세상에 연결시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자는 의미로 헬렌켈러의 스승인 ‘설리번’을 이름으로 정했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장갑의 손등 부분에 ‘감사합니다’와 ‘사랑합니다’란 뜻의 수화 모양이 새겨진 엄지장갑을 직접 제작해 다음(Daum) 스토리펀딩에 일정금액 이상을 후원한 사람들에게 답례품으로 준다. 지난달 25일부터 펀딩을 시작했다. 오는 1월 25일까지 300만원 모금을 목표로 했지만 단 하루만에 500만원을 모았다. 지금까지 모인 후원금은 약 2200만원이다. 후원금은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콘텐츠 제작비용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원씨는 “청각장애인 부모를 두신 분들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 가장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회적기업 ‘열린 책장’도 설리번의 지원군이다. 열린 책장은 각종 수화 모양을 담은 이모티콘을 엄지장갑 캠페인을 후원한 이들에게 제공한다.

‘설리번(Sullivan)’팀이 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을 비하하는 ‘벙어리’란 표현이 있는 ‘벙어리장갑’ 단어의 사용을 지양하고 ‘엄지장갑’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판매를 위해 직접 제작한 엄지장갑 2종. 황토색 디자인 장갑의 손등 부분엔 ‘감사합니다’란 의미를 지닌 수화 모양이, 분홍색 디자인 장갑의 손등 부분엔 ‘사랑합니다’란 의미를 지닌 수화 모양이 새겨져 있다. (사진=설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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