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금융위원회가 이번 신용평가 선진화 방안에 포함시킨 선정신청제는 생소한 제도다. 회사채 발행기업이 원할 경우 금융감독원에 신용평가사를 선정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이 경우 현행 두 곳 이상 신평사로부터 등급을 받아야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 복수평가의무를 면제하고 한 곳에서만 등급을 받아도 되는 단수평가를 허용하는 제도다.
금융위가 선정신청제를 도입한 것은 회사채 발행사의 수수료에 의존하는 신용평가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 소지를 없애자는 취지다. 그러나 제도 시행 전부터 악용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먼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채권분석가는 “동양사태 이후 제재가 강화되면서 지금은 신평사의 등급장사(후한 등급을 주겠다며 발행회사로부터 일감을 받는 행위) 못지 않게 발행기업의 등급쇼핑(신평사 3곳에 등급 의뢰후 상대적으로 높은 등급을 매긴 2곳을 선택하고 1곳을 계약 취소하는 행위)을 차단해야하는데 이러한 고민은 이번 방안에서 소홀하게 취급됐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가 쥐어준 선정신청제란 옵션을 행사할 가능성 높은 갑(甲)은 대표적으로 공기업이 꼽힌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선정신청제를 가장 확실하게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공기업”이라며 “공기업은 어차피 국가지원가능성이 반영된 최고등급으로 신평사간 차이 없기 때문에 소액이나마 수수료 절감효과를 기대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선정신청제가 공기업의 단수평가 합법화하는 제도로 변질되면, 오히려 시장에는 공기업 재무정보 불투명성만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더 우려할 대목이다. 금융위가 공기업 독자신용등급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단수평가는 허용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또 우량 채권에 대한 평가사 역할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나타나고, 평가시장 규모도 축소해 또다시 기존 평가사들을 품질제고보다는 경쟁구도로 몰고 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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