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업계의 이유있는 반쪽짜리 '고통분담'

하이트진로·오비맥주, 도매사 분할상환 정책 시행
전국 도매사 1100곳 넘지만 모두 혜택 받지 못해
연체규모, 신용도 등 고려해 내부 지침 맞춰 선정
거리두기 강화에 포괄적 상생 힘들어져
  • 등록 2020-09-16 오전 5:00:00

    수정 2020-09-16 오전 5:00:00

[이데일리 이성웅 기자] “우리는 분할상환 혜택을 못 받는대요. 이게 무슨 상생이에요. 기업 이미지만 좋게 포장하는 거지”

지난 8일 자신이 수도권에서 주류도매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A씨의 볼멘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수도권에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 중인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철동 젊음의 거리 일대 주점에서 밤 9시가 다가오며 영업 종료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하이트진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재확산 영향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전국 주류도매사를 돕기 위해 주류대금 분할상환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유흥채널에서 주류 수요가 줄어든데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오후 9시 이후 음식점 등에서 배달·포장만 가능해지면서 사실상 주류 영업이 중단된 것에 따른 결정이다.

하이트진로는 상반기에도 한 차례 도매사를 지원을 했으며, 이번에는 전국 800여개 거래처를 대상으로 구매대금의 규모 및 상환 예정일 등을 고려해 적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국에 종합주류도매사는 1135곳이 존재한다. 하이트진로의 설명대로라면 1135곳 중 800곳을 제외한 나머지 300여 곳은 분할 상환 지원 대상 사업자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A씨는 바로 이 300여 곳에 속한 도매사였다. A씨 역시 지원을 받는 800여곳의 도매사와 마찬가지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지원 소식을 듣고 담당 영업사원에게 연락했지만, 지원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이미 하이트진로에 담보까지 잡혀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대금도 계속 연체되고 있다”며 “신용도나 연체율 등이 우수한 도매사만 골라서 지원해주는 게 무슨 상생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이틀 뒤 오비맥주에서도 주류도매사들과 고통분담 차원에서 동일한 내용의 상생정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비맥주 역시 전국의 모든 거래처에게 분할상환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매대금 규모나 상환 예정일 등을 고려해 대상 거래처를 선정한다는 설명이다.

A씨의 사연을 들은 주류업계에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공통된 입장이 나오고 있다. 하반기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주류도매사 뿐만 아니라 제조업체도 마찬가지다. 주류업계도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장마, 태풍이 겹치면서 여름 성수기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선 올해 맥주시장이 전반적으로 전년 대비 10% 이상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비맥주 ‘카스’와 하이트진로 ‘테라’ (사진=각 제조사)
하이트진로는 맥주 ‘테라’의 선전으로 맥주부문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홈술’ 수요 증가로 유흥 매출 감소를 만회했다. 그럼에도 2014년 맥주사업 적자 전환 이후 이어져 온 손해를 모두 갚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게다가 시장 경쟁은 점점 신화 돼 하반기에도 비용 부담은 심화될 전망이다. 소주 부문도 3분기부터 가격 인상효과가 사라지면서 실적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오비맥주는 매출 급감의 영향으로 올해 들어서만 두 번째 희망퇴직자를 받고 있다. 지난 4월에 이어 근속 기간 10년 이상인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자를 모집하고 있다. 강제성 있는 구조조정은 아니지만 코로나 여파로 주력 시장인 유흥채널에서 힘을 못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분할상환을 지원하더라도 어느 정도 대금 회수가 가능한 거래처들을 우선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며 “주류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제조사에서도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류업계 관계자도 “국가적 차원의 포괄적 복지가 아닌 이상 이러한 상생정책은 안타깝지만 회사 내부의 지침에 맞게 시행할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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