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을 이끌었던 나라야나 코컬라코타 전 총재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 기고문에서 밝힌 추가 금리 인하 주장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촉발시킨 도화선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미국에 본격 상륙하며 경제 악화 우려가 커지자 연준은 일찌감치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금리인 0~0.25%까지 내려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
코컬라코타 전 총재는 “마이너스 금리로 가면 소비수요를 더 자극할 수 있고, 은행들도 더 낮은 금리에 더 적극적으로 대출에 나설 수 있습니다”라며 마이너스 금리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열흘쯤 지났을까, 시장참가자들은 실제 가격에 연준 마이너스 금리를 반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시카고옵션거래소(CBOT)에 상장돼 있는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가격이 100을 넘어서서 거래된 것인데요.
여기서 잠깐, FFR에 대해 알아보고 가겠습니다. 현재 미 연준이 기준금리로 삼고 있는 금리가 바로 만기 하루짜리(오버나잇) FFR입니다. FFR은 미국 은행들이 단기자금시장에서 하루동안 거래할 때 쓰이는 금리입니다. 법률상 미국 은행들은 예금의 일정 부분씩을 연준에 지급준비금(=지준)으로 쌓아둬야 합니다. 이 준비금을 연방기금이라고 하구요, 법정 지준을 맞추기 위해 타 은행으로부터 하루간 돈을 빌릴 때 주는 금리가 바로 FFR입니다. 연준은 바로 이 FFR을 타깃팅해서 기준금리를 정합니다.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하면 지준을 맞춰야 하는 은행도 돈을 빌리기 수월하고, 그래서 FFR은 아래로 내려가죠. 반대로 시중에 유동성이 부족하면 더 높은 금리를 주고 돈을 빌려야 하죠.
현재 연준이 기준금리로 정한 명목 FFR은 0~0.25%죠. 따라서 연준은 수시로 단기자금시장에 유동성을 넣거나 뺌으로써 실세 FFR이 0~0.25%에서 움직이도록 시장조작을 합니다. 통상 연준은 실세 FFR을 높이고자 할 때 보유한 국채를 내다 팝니다. 은행들이 이 국채를 사면 은행이 보유한 현금이 연준으로 흡수되죠. 이럴 때 지준이 부족해진 은행이 다른 은행에서 단기자금을 빌리려면 더 높은 금리를 내야 하고, 자연히 실세 FFR이 올라가는 겁니다.
이쯤 설명했으니 이제 다시 CBOT의 FFR 선물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FFR 선물은 매달 마지막 영업일에 정산하는 만기 30일짜리 1개월물 선물입니다. 주로 대형 은행들이 단기자금시장에서의 포지션을 헤지하기 위해 거래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FFR 선물 가격이 지난 8일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반영했는데요, 코컬라코타 전 총재의 발언이 나온 지 12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2021년 5월 만기 FFR 선물 가격은 100.10을 기록했습니다. 기준인 100.00에서 선물가격인 100.10을 빼면 -0.10%가 되고 이를 내재금리(implied rate)라고 합니다. 이는 향후 1년 뒤 기준금리가 마이너스로 내려갈 것으로 투자자들이 기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비단 시장참가자들만 연준의 마이너스 금리를 압박하는 건 아닙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연준은 그들의 정책옵션에 마이너스 금리를 넣지 않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며 마이너스 금리를 검토하라고 조언했습니다.
|
급기야 오는 11월3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기 부양에 조바심이 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트위터에 “다른 국가들이 마이너스 금리 혜택을 받고 있는 만큼 미국도 이런 선물을 받아야 한다”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앞서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미 도입한 만큼 마이너스 금리의 정책효과가 아예 없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는 은행들은 낮은 금리에 대출을 더 늘릴 수 있고, 개인들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유인이 되는 건 분명합니다. 또 자본조달 비용을 낮춰 금융자산 가치를 높여줄 수도 있구요. 결과적으로 총수요를 높이는 효과가 있는 겁니다.
또 여전히 달러인덱스가 100을 웃도는 강(强)달러 국면이 계속되는 만큼 마이너스 금리는 달러화 강세를 완화시켜 글로벌 달러 유동성을 늘려주고 신흥국시장을 안정시켜줄 수 있습니다. 달러화가 약해지면 미국 입장에서도 수출에 보탬이 되고 디플레이션 리스크가 줄어들 수 있으니 윈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정책 결정권자인 연준의 생각일텐데요.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봐선 연준이 마이너스 금리를 꺼내들 생각은 거의 없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2주 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파월 의장은 몇 차례나 “현재 연준 기준금리는 실효하한금리(Effective Lower Bound)까지 와 있다”고 했습니다. 실효하한금리는 더 내려봐도 정책효과가 없는 한계금리 수준을 말합니다. 즉, 마이너스 금리는 별 도움 안된다고 분명히 선을 그은 겁니다. 13일(현지시간)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화상연설에서도 “금리와 자산매입, 포워드 가이던스(금리 선제안내)라는 수단들이 있는 만큼 현재로선 연준에게 마이너스 금리는 고려대상이 아니다”고 재확인했습니다.
그의 전임자인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도 “연준은 마이너스 금리를 극도로 꺼리는 만큼 실제 마이너스 금리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망했습니다. 분명 정통 중앙은행 뱅커들에게 마이너스 금리는 어지간해선 들여다 보기도 싫은 정책수단인 겁니다.
특히 연준에게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주저하게 만들 요인 중 하나는 BOJ와 ECB의 전례입니다. 앞서 마이너스 금리라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 일본과 유로존을 보면 마이너스 금리의 효과를 불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일례로 일본만 봐도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1%까지 내려 경기 부양을 꿈꿨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BOJ는 자국 은행들에게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패널티를 물도록 했지만, 은행은 차라리 패널티를 물고라도 중앙은행에 돈을 쌓아두거나 안전한 국채만 계속 사재기 했죠. 돈 쓸 곳도 많지 않은데다 부실한 기업에 대출했다가 떼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입니다.
기업 투자나 개인 소비 부양효과가 생겨나지 않자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경기 침체 전망이 장기화하다 보니 장기금리는 계속 떨어지고, 장기와 단기금리가 딱 붙어 버려 향후 경기 침체 우려만 키우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로 빌려줘 돈을 버는 은행에게 장기금리 하락과 장·단기금리 차 축소는 수익성을 망가뜨렸구요, 장기금리 마저 마이너스로 떨어지니 채권을 투자해 보유함으로써 이익을 내야 하는 연기금과 머니마켓펀드(MMF) 수익률도 악화시키고 말았습니다. 또한 이는 주가 하락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은행권의 역할이나 안전판으로서의 연기금의 중요도, 약 4조달러에 이르는 MMF 시장규모 등에서 일본보다 훨씬 더 신경 써야 할 게 많은 미국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두려울 수 있습니다)
결국 BOJ는 억지로 장기금리를 0% 위로 끌어 올려 디플레이션 우려를 낮추고 은행권 수익성을 지켜주기 위해 수익률곡선관리(YCC)라는 조치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의 부양책이 또다른 부양책을 부르는, 그래서 늪처럼 자꾸만 수렁으로 빠져드는 이 상황에서 수년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지금보다 경기 전망이 더 악화된다 해도 연준은 마이너스 금리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연준이 더 쓸 카드가 없다는 뜻은 아니구요.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인플레이션이 회복될 때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내놓고, 국채와 회사채를 직매입하는 규모를 더 늘릴 겁니다.
그러니 연준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할 것이란 기대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지 않는다는 실망도 섣불리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 자체로는 주식 투자에 호재도, 악재도 아닙니다. 마이너스 금리 얘기가 자꾸 나온다는 건 그 만큼 미국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방증일테니, 악재 쪽에 가깝긴 하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