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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정부가 복지정책과 저출산정책을 혼동한 탓에 많은 예산을 복지부문에 올인하다시피 했지만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겁니다. 정책 방향을 국가 자원의 집중을 완화하고 물리적, 심리적 경쟁을 줄이는 쪽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또 인구 변동으로 인한 세대간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연공서열 폐지와 같은 제도 개선이나 국민 의식 개선 등 새로운 질서를 만들 필요도 있습니다.”
국내 인구학에 관한 한 대표적인 권위자로 손꼽히는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겸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지난 6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출산율이 당장 반등하진 않겠지만 출산율이 추가로 크게 하락하거나 단시일 내에 인구가 급감하진 않을 것”이라며 그 남은 시간 동안 이같은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구수 자체가 줄어드는 것보다 인구구조의 질적 변화가 더 중요한 만큼 정부나 기업 모두 이런 변화를 미리 점치고 그에 맞춰 대응해야만 낭패를 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조영태 교수와의 일문일답.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98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1명 아래로 떨어졌다. 출산율은 얼마나 더 떨어질 것인가.
△당분간 좀 더 내려갈 것 같다. 출산율이 올라갈 수 있으려면 분자인 신생아가 늘어나든지, 분모인 총인구가 줄어들든지 해야 한다. 전라남도 해남군이 1.89명으로 7년 연속으로 합계출산율 전국 1위라고 하지만 이는 분모가 줄어든 탓이 크다. 조금 더 유의미한 통계가 되려면 실제 신생아가 몇 명이나 태어났는지가 중요하다. 작년 신생아수가 32만5000명이었는데 올해에 더 줄어들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고 내년에는 신생아수가 29만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본다면 2년 정도는 출산율이 더 낮아질 것이다. 다만 대부분이 우리나라 출산율이 앞으로 더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들 하지만 이후 7~8년은 2020년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국내 주된 출산연령이 32~36세인데 그 나이대 여성수가 늘어나고 있고 결혼이 늦어지면서 40대 출산도 늘어나고 있어서 신생아가 늘진 않더라도 급격하게 줄어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의 원인은 무엇인가.
△과거 역사를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나라는 출산을 많이 했고 어떤 나라는 적었다. 기본적으로 유목민들이 많은 곳은 출산이 적었다. 반대로 한 곳에 정주하는 지역에서는 출산율이 높았다. `인구론`에서 멜서스가 규명한 것이 바로 자원의 총량과 태어나는 아이의 숫자가 상호 조절된다는 것이었다. 인구밀도가 높으면 자원의 양이 적어져서 경쟁이 심화되기 때문에 자손보다는 자기자신의 생존이 더 중요해진다. 과거 베이비부머가 어릴 때만 해도 해당 연령대 인구가 더 많았지만 전국에 퍼져 있었고 모두가 대학에 입학하지 않아도 됐던 만큼 실질적으로 느끼는 심리적 밀도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 청년을 보면 인구는 적지만 80% 이상이 대학을 나왔고 모두가 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길 원한다. 일자리 등도 서울에만 집중돼 있다. 이렇다보니 실질적인 경쟁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물리적인 집중도도 높고 심리적인 밀도도 높아진다. (세대의) 재생산보다는 생존이 더 급하다.
△정부가 복지정책과 저출산 정책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놓고 그동안 아동과 보육과 관련된 복지가 좋지 않은데서 그 원인을 찾았고 그 때문에 복지 문제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복지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여론조사를 하면 복지가 부족한 것이 저출산의 원인인양 나온다. 그게 틀렸다. 지금까지도 저출산 대책으로 복지 타령만 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 아동과 보육 복지에 예산을 주로 썼고 이제는 청년 복지로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지금처럼 계속 복지로 저출산 현상을 접근하려 한다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올라갈 가능성은 일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복지가 좋아지면 출산이 늘어날 것이라던 정부의 가설은 정반대 결과로 나왔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청년 복지도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스웨덴 등에서 성공한 저출산 정책을 그대로 가져와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여건이 다른 우리나라에서 동일하게 작동할 것으로 보는 게 이상한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실질적인 경쟁이 치열하고 심리적 밀도도 높은 상황에서 복지로 더 퍼준다고 해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출산 가능한 연령대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그들이 가지는 심리적, 물리적인 경쟁을 낮추는 쪽으로 가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 출산율이 반등하기 위해서는 지방 청년들이 살기 좋은, 그래서 굳이 서울로 오지 않아도 되도록, 심지어 서울 청년도 지방으로 가도 생활할 수 있게금 해줘야 한다. 심리적인 요인도 중요하다고 본다. 모두가 피라미드의 점점으로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집중을 분산시키는 것이 좋은 인구 정책이 될 수 있다. 대체로 한 부부는 자녀 두 명을 적정한 수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자원만 잘 분산시켜 두면 자연적으로 출산율 2명 수준에 수렴하지 않을까 한다. 다행히 국내 총인구는 당장 급격하게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급격한 감소는 2050년은 돼야 나타나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는 여러 정책을 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셈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적극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주체가 줄어드는 등 경제에도 심각한 충격이 예상된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시장이 줄어드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인구 수도 많았고 이를 토대로 일도, 소비도 가장 왕성하게 해왔다. 그러다보니 우리 시장은 지속적으로 커졌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으면 판매가 늘어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베이비부머가 노동시장에서 빠져 나가고 있고 은퇴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맞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과거 질서 속에서 시장을 바라보면 지금은 위기지만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면 새로운 기회가 올 수도 있다. 그런 기회를 잡으려면 혁신과 변화를 해야만 한다.
-우리 정부도 계속고용제 도입이나 정년 연장 및 폐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젊은층과의 세대간 갈등이 생길 수도 있는데.
-기업들도 이런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이 필요한데.
△기업이 인구 현상을 되돌릴 수는 없다. 기업은 인구현상이 만들어 놓을 단기 또는 중기 사회 변화상을 하루라도 빨리 예측하고 그것에 맞춰 시장접근 방식을 점검해야 한다. 예컨대 최근 1인가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1인가구가 증가하니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에서 뭔가 해 보려 한다면 우선 앞으로의 1인가구 변동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만일 앞으로 1인가구가 계속 늘어날 수 없는데도 그걸 모르고 계속 증가할 것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면 큰코 다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1인가구는 60대 이상에서 30대에 비해 더 급속하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35~39세에서의 1인가구 수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괜시리 30대 1인가구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생각하고 시장에 들어가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인구 감소가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에는 과연 어떤 변화들이 나타날 것으로 보나.
△앞서도 얘기했듯이 국내 인구가 곧바로 급격하게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10년 간 국내 거주 내국인으로만 쳐도 인구는 약 70만명 줄어드는 선에 그칠 것이다. 크게 준다고 볼 수 없다. 그보다는 인구의 질적 변화가 매우 클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인데, 은퇴 연령대 인구가 매년 80만명 넘게 증가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도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40대에도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지방에 사는 청년 수는 줄어들고 하는 식이다. 이렇게 새로운 인구현상이 나타나면 시장이 바뀐다. 시장이 바뀌면 경제활동의 질서도 크게 바뀌게 된다.
-정부가 인구정책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본격적인 인구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어떤 점들을 고민해야 하는지 조언한다면.
△정해진 미래에 대응하는 것은 민간이 해야 하고 미래를 바꾸어 가는 일은 정부가 해야 한다. 이미 바꿀 수 없게 된 미래에 대해 정부가 기존 질서가 그 미래에 제대로 작동할지 안할지를 점검하고 필요한 변화를 이끌어 가는 일은 필요하다. 그런데 그 것이 저출산 대응을 하지 말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0.98명에 불과한 합계 출산율은 매우 비정상적이며 정부는 당연히 이 비정상을 정상화 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를 내버려 둔다면 정부 내 저출산 관련 위원회나 조직을 다 없애는 편이 낫다. 예산만 낭비하는 셈이니까 말이다. 이제 정부는 복지 담론에서 벗어나서 우리나라의 출산 관련 상황을 제대로 직시했으면 한다. 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저출산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조영태 교수는
△1972년 서울 출생 △고려대 사회학과 △미국 텍사스대 사회학 석사 △텍사스대 인구학 박사 △베트남 인구총국 인구정책 고문 △저서 ‘정해진 미래’로 2017년 정진기언론문화상 대상 수상 △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현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