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수학, 화학, 물리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그 중요성은 점차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기초과학은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져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기초과학의 세계에 쉽고 재미있게 발을 들여 보자는 취지로 매주 연재 기사를 게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전국 초·중·고등학생 대상 과학 교육 프로그램인 ‘다들배움’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들과 매주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중 재밌는 내용들을 간추려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 옥토봇. 사진=하버드 공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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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인형뽑기 기계손은 왜 그리 야속한 걸까. 인형뽑기 놀이를 몇 번 정도 해 본 사람이라면 이번엔 제대로 잡았다 생각했다가도 배출구 직전까지 와서 허무하게 손을 놓아 버리는 게 일쑤인 인형뽑기 기계에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거기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을 만한 이유도 있다. 인형뽑기 기계손은 단단한 금속 재질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인형뽑기 기계는 미리 정해진 각도와 타이밍에 따라 계산된 움직임만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인형뽑기 손이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져 그 손에 닿는 물건의 모양에 맞게 손의 모양도 변형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인형뽑기방은 애초에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인형뽑기 손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딱딱한 금속이 아닌 고무나 실리콘 등 유연한 소재로 만든 로봇을 소프트 로봇(soft robot)이라고 한다. 소프트 로봇은 비교적 단순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강철로 만들어진 일반적인 로봇보다 움직임이 부드럽고 외부 충격에 강해 여러 척박한 환경에서 의료, 탐사, 구조 등의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생김새나 움직이는 원리가 실제 생명체들을 닮은 생체모방형 로봇에도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해 소프트 로봇으로 만듦으로써 생물의 유연함까지 구사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소프트 로봇인 옥토봇(Octobot). 지난 2016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공대에서 실리콘으로 만든 문어를 닮은 이 로봇은 배터리와 제어 장치까지도 모두 연성 재질로 만들면서 소프트 로봇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옥토봇은 과산화수소가 백금에 닿으면 산소와 수증기로 분해되는 성질을 이용한다. 전기에너지를 쓰지 않고 화학작용을 동력으로 한다. 화학 반응을 통해 몸체에 달린 촉수를 풍선처럼 팽창시키면서 움직이는 방식이다.
| 가오리 로봇. 그래픽=과기정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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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서강·하버드 질병바이오물리연구센터 국제공동연구진은 쥐의 심근세포를 활용해 동력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가오리 로봇을 만들기도 했다. 연구진은 쥐의 심장 근육을 구성하고 있는 심근세포에 전기 자극을 가하면 가오리 지느러미처럼 근육이 수축하는 사실에 착안해 가오리 로봇을 만들었다. 연구진은 쥐의 심근세포를 전기 자극 대신 빛에 반응할 수 있도록 유전자를 변형했다. 이 결과 빛을 주고 거두는 과정을 반복하면 가오리 로봇은 수축과 이완을 통해 이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생체조직과 무기물의 결합으로 전기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바이오 하이브리드 로봇으로 기록됐다. 양쪽 지느러미에 빛의 양을 달리하면 수축·이완 운동을 조절할 수 있어 방향까지 전환할 수 있다.
이 밖에 손을 사용할 수 없는 환자들의 손가락 움직임을 돕기 위해 사용되는 소프트 글러브, 자기장을 이용한 지렁이 로봇, 먹을 수 있는 소프트 로봇 등 소프트 로봇에 대한 연구는 다각도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3D프린팅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소프트 로봇 제작에 3D프린터를 사용하는 시도가 활발해지면서 시간과 비용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도움말=송현서 과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