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기획자…K컬처 이어갈 '인재'가 필요하다[김신아의 한류 이야기]

英 안무가 아크람 칸 키운 파룩 초드리
예술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획 능력'
해외 진출의 힘은 오랜 경험 축적한 전문가
치열한 예술시장 헤쳐나갈 전문인력 필요
  • 등록 2023-12-09 오전 9:00:00

    수정 2023-12-09 오전 9:00:00

한국의 문화예술이 해외를 사로잡고 있다. 대중예술은 물론 순수예술도 이제는 ‘한류’를 넘어 ‘K컬처’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한국 문화예술의 관심을 장기적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국제문화교류 전문가인 김신아 화성시문화재단 대표이사가 보내온 한국 문화예술의 세계화를 위한 제언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지난해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한 안무가 아크람 칸의 ‘정글북: 또 다른 세계’의 공연 장면. (사진=LG아트센터 서울)
[김신아 화성시문화재단 대표이사] 영국을 대표하는 안무가 아크람 칸을 지금의 세계적 브랜드로 만든 이가 있다. 프로듀서 파룩 초드리(Farooq Chaudhry)다. 그는 런던에서 방글라데시 이민자 출신으로 태어난 칸의 문화적 특징을 장점으로 만들어 데뷔시켰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이끌어낸 파룩 초드리는 아크람 칸을 영국의 문화 포용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러 나라 유명 축제에 내보내 명성을 쌓았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주인공 줄리엣 비노쉬와의 공연을 비롯해 눈에 띄는 이슈를 만들어 몸값을 높였다.

“방시혁 없는 방탄소년단은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파룩 초드리는 작품 제작을 위해 전혀 연고가 없는 아부다비 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내기도 했다. 사업 감각도 탁월해서 아크람 칸 외에도 예술과 지역사회를 매개하고 여러 단체를 성공 궤도에 안착시켰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제는 영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재능 있는 기획자를 양성하면서 아크람 칸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문화는 예술가의 힘으로만 성립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다. K컬처도 다르지 않다. 예술가를 위해 기획, 프로듀싱 등을 담당한 인재가 필요하다. “방시혁 없는 방탄소년단(BTS)은 없다”는 의미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경우 매년 1~2명이기는 하지만 해외 갤러리에 전략적으로 한국인 큐레이터를 배치하고 있다. “다년간 지원한 곳은 한국작품을 수집해 전시도 기획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사람한테 투자해야 미래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때 우리나라의 젊은 기획자들도 국제교류에 적극적이었다. 세계인을 한국으로 불러 모으는 공연예술 유통시장이 시작되면서다. 예술가들 또한 자신의 작품과 해외를 연결해줄 기획자 찾기에 분주했다. 서울아트마켓(PAMS)을 기점으로 해외 유수의 국제 예술축제와 우리 정부의 지원프로그램이 만나면서 국내 예술가 및 작품 상당수가 해외 시장을 확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투자는 없었다. 의욕적이었던 기획자들은 수익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 현장에서 기대보다 빨리 지쳤고, 지역 곳곳에 만들어지는 문화재단 등에 취직해 국제교류에서 손을 뗐다. 기술 발달로 소통 방식이 바뀌면서 물리적 거리를 건너 사람이 모여야 하는 마켓은 힘을 점점 잃었다. 반면 소수의 국제유통 전문가 그룹의 네트워크와 그들만의 리그는 더욱 강화됐다.

국제 교류 기관 중심으로 전문 인력 양성 고민해야

지난해 6월에 열린 ‘K-뮤지컬국제마켓’ 현장. (사진=예술경영지원센터)
문제는 우리에게 이 리그에 들어갈 선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외국 전문가들 입에 이름 오르내리는 불과 몇 명으로는 팀을 만들 수도, 경기에 나설 수도 없다. 그러니 치열한 유통시장에서 예술 한류를 지속 확대하려면 과감한 결단과 투자로 전문인력을 길러야 한다.

파룩 초드리처럼 자신만의 기획력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전문가가 우리에게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0년 발표한 ‘국제문화교류실태조사’에 따르면 국제문화교류 사업을 하지 않은 주된 이유로 △재원 조성의 어려움(35.6%) △관련 정보 부족(19.6%) △사업 수행 노하우 부재(7.2%) △관련 담당자 부재(6.0%) 등이 꼽혔다. 국제문화교류의 어려움으로는 △예산 부족(58.3%) △해외 단체·예술가와의 네트워크 부족(8.9%) △관련 정보 부족(6.3%) △전문인력 부족(3.8%) 등을 얘기한다.

국고보조금은 차치하더라도 재원 조성은 물론 관련 정보와 노하우, 네트워크는 장기간 고민하며 다양한 경험을 축적한 전문가로부터 나오는 역량이다. 같은 조사에서 국제교류 담당 인력을 채용하고자 할 때 ‘적합한 인재 확보 어려움(37%)’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국내에 전문가가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제교류를 실행하는 기관을 중심으로 전문인력 양성을 고민해야 한다. 전문가로 발전할 수 있는 장기 과정을 촘촘히 설계하고 파룩 초드리와 같은 전문가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이렇게 길러진 인력이 아트마켓에서 만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 선수들과 함께 뛸 때 K컬처를 통한 한류는 지속 확장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것이다.

◇필자 소개

△화성시문화재단 대표이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이사(2022~2025) △양천문화재단 이사장(2021~2022) △국립극장진흥재단 사무국장(2020)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사업본부장(2015~2020) △서울세계무용축제 사무국장(1999~2012) △세르반티노 축제 한국특집(2015), 밀라노 엑스포 한국주간 기념공연(2015), 한중일예술제(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특별공연(2014) 및 한-이태리 수교기념 공연(2013), 한-아랍·아프리카 문화축제(2007~2011) 등 총감독 △국회문화체육관광위원장 문화예술특별상(2021), 무용국제교류 발전상(2018), 해외문화홍보원장 표창(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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