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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원석 검찰총장의 성향과 그간 행보를 되짚어보면 이 차장검사 엄벌은 예견된 수순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평가입니다. 현직 검찰 관계자는 “이 총장은 부하직원들을 온화하게 대하기로 유명하나, 부정비리와 태업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속칭 ‘얄짤’ 없는 엄부(嚴父)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평했습니다.
실제로 이 총장은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 “저는 제 식구 감싸기란 말이 제일 싫다, 직분을 맡는 동안 감찰총장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며 내부 비리 엄단 의지를 내세웠고, 스스로 ‘청렴’을 주제로 특별강연에 나서 “저희 가족과 저는 평생 골프채 한 번 잡아본 적 없다”며 일선 검사들을 뜨끔하게 했습니다.
또 전국 검찰청 간부들이 모이는 월례회의마다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있어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며 거듭 신중한 처신을 당부했고, 이 차장검사 비위 의혹이 불거진 직후엔 “내 손이 깨끗해야 남의 죄를 단죄할 수 있다”며 엄정한 조치를 예고했습니다. 이를 놓고 검찰 관계자는 “본인은 아무리 탈탈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올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한 것들 아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이 총장이 이처럼 내부 비리 단속에 철저한 이유는 국민적 신뢰를 잃은 검찰의 수난을 최전방에서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권 시절, 조국·추미애·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은 ‘검사의 무소불위 권력을 해체하고 치외법권에서 끌어내겠다’며 대대적인 검찰 권력 축소 작업에 나섰습니다. 검찰은 자칫 수사 권한을 모조리 빼앗기고 기소청으로 전락할 초유의 위기에 처했었죠.
특히 ‘추미애-윤석열 갈등’, ‘검찰개혁’ 정국이 격화되자 윤석열 사단 메인 맴버인 이 총장은 연거푸 좌천당하고 제주지검으로 사실상 유배되는 신세를 겪었습니다. 제주도의 에메랄드빛 먼바다를 바라보며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어찌 해소하나’ 고민한 이 총장은 결국 본연의 할 일에 충실하고 내부의 잘못은 엄정하게 벌하는 정도(正道)만이 해법이라는 결론을 내린듯 합니다.
또한 이 차장검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사에서 손을 떼 야권의 집중포화로부터 거리를 두게 됐습니다. 그를 둘러싼 비리 논란이 국회에서 두고두고 거론되며 검찰 조직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는 사태도 막은 것입니다. 이를 놓고 야권 일각에선 검찰이 꼬리를 재빠르게 잘라냈단 냉소 섞인 평가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 차장검사 탄핵안이 발의된 직후 이 총장은 “검사들을 탄핵하지 말고 저 검찰총장을 탄핵하라”며 누구보다도 침통한 심경을 드러낸 적 있습니다. 제 한 몸 건사하기 위해 사지를 잘라내는 도마뱀식 생존전략이 아니라, 회초리를 높이 쳐드는 엄부의 결단이라는 데 검찰 구성원들이 묵묵히 동의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