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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정치입문, 대선출마, 정계은퇴·복귀 등 중대 결정을 언제 어떤 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효과는 극과 극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감각이 가장 뛰어난 인물은 누가 뭐래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직관의 정치인’이었던 YS의 정치적 타이밍은 기가 막혔다. 마치 족집게 도사와도 같았다. 이는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논리의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던 점과는 묘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안철수, 혜성처럼 정치권 등장…지난 대선 이후 정치적 내리막길
가장 대표적인 게 YS의 단식이었다. 요즘에야 정치인의 단식은 조롱거리에 불과하고 별 효과도 없다. 5공 시절에는 달랐다. YS의 목숨을 건 단식은 단숨에 정국을 변화시키며 민주화의 기폭제가 됐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YS는 더 거침이 없었다. △하나회 숙청을 통한 쿠데타 가능성 차단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등 전광석화와 같은 개혁조치는 ‘정치적 타이밍의 정석’과도 같다. 정치적 감각 면에서만 본다면 YS는 그야말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정치인이었다.
YS와 달리 정치적 타이밍에서 늘 손해만 본 정치인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다. 손학규 대표가 지난 2006년 10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시절 ‘100일 민심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날에 북한의 1차 핵실험이 터졌다. 이후 10여년간 손 대표가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할 때면 나라 안팎으로 메가톤급 사안이 속출했다. 손 대표 뉴스는 완전히 묻혔다. 돌이켜보면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결정적 시기에 지나치게 좌고우면하는 손 대표의 정치적 스타일도 원인이었다.
정치판 뒤흔든 안철수의 정계복귀…파괴력 놓고 엇갈리는 전망
안철수 전 대표가 연초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해외생활 1년 4개월 만이다. 4월 총선을 90여일 앞두고 정치적 보폭도 커지기 시작했다. 총선을 앞두고 유동적인 정치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2012년 대선과 2017년 대선에서 연이어 실패했다. 남은 건 2022년 대선이다. 차기 대선으로 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4월 총선에서 본인의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는 게 필수적이다. 4월 총선의 프레임은 명확하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찬반이다. 관건은 이른바 ‘반(反)문재인’을 기치로 한 ‘중도·보수 대통합론’에 발을 담그느냐다. 이후 내부 권력투쟁을 거쳐 반(反)문재인 차기 주자로 우뚝 설 수 있느냐 여부다.
지난 2017년 5.9 대선 막판 안철수 전 대표는 ‘문재인 vs 안철수’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졌을 때 외연확장보다는 ‘자강론’을 고집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정치에 가정이라는 건 없다. 만일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전 대표가 ‘반(反)문재인’을 내세워 다른 정치세력과 연대했다면 문재인 대통령 탄생은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바 ‘조국사태’를 거치며 민주당·한국당 열성 지지자들의 목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커졌다. 시중에는 “민주당도 싫고 한국당도 싫다”는 여론도 상당하다. 안철수 전 대표의 권토중래는 이러한 여론을 단일한 정치세력으로 묶어내는 게 전제돼야 한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차기 대선의 전초전인 4월 총선에서 완벽하게 부활하느냐 아니면 정치무대에서 은퇴하느냐는 전적으로 안철수 전 대표 본인의 역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