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박물관]①'기브 미 쪼꼬렛'의 씁쓸한 추억, 달콤한 추억으로 '가나'

롯데제과, 마이크로그라인드 공법 들여와 가나초콜릿 생산
신격호 명예회장, 스위스 기술자 영입해 전폭 지원
출시 첫 해 400만개 팔리며 파란 일으켜
다양한 상품과의 협업으로 색다른 재미 선사
  • 등록 2017-12-14 오전 6:00:00

    수정 2017-12-14 오전 6:00:00

[이데일리 송주오 기자] ‘저고령당(貯古齡糖)’

조선 말기 궁중에서 초콜릿을 부르던 명칭이다. 당시 웨베르 러시아공사 부인이 양화장품과 함께 초콜릿을 명성황후에 진상하며 국내에 처음 초콜릿이 소개됐다고 한다. 초콜릿 전파에 대한 또 다른 설도 있다. 상궁들에게 선물을 자주 해 인기가 높던 이토 히로부미가 궁중에 퍼트렸을 것이란 얘기도 전해진다. 어쨌든 초콜릿은 조선시대 궁중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최고급 간식이었다.

쉽게 구할 수 없었던 ‘귀한 간식’ 초콜릿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6·25전쟁 직후다. 당시 국내에 주둔한 미군들이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전해주며 자연스레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초콜릿의 달콤 쌉싸래한 맛은 금세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초콜릿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은 미군 트럭만 보이면 졸졸 따라다니기 일쑤였다. 초콜릿을 구할 길이 미군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시 아이들이 영어를 배운 것도 아니었다. 전쟁 직후로 나라는 폐허였고 국민은 가난했다. 먹고살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교육은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혜택이었다.

아이들은 미군이 보이면 “기브 미 쪼꼬렛”을 외쳤다. 굴욕적이지만 이는 가난하고 굶주린 아이들의 절규였다. 초콜릿의 당도가 배고픔을 일시적으로나마 없애줬기 때문이다. 정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먹고 살겠다는 일념으로 외국의 언어를 자연스레 터득하던 시절이다. 동시에 진상품이었던 초콜릿은 어느새 굴욕을 안겨주는 상품으로 성격이 변했다.

◇가나초콜릿 출시…굴욕의 역사 씻어내다

우리나라는 1968년 초콜릿 독립국으로 변모한다. 동양제과와 해태제과가 각각 ‘No.1 초콜릿’, ‘해태 쵸코렡’을 생산하며 초콜릿 대중화의 기초를 닦았다. 초콜릿 독립을 이뤘지만, 품질은 선진국 제품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초콜릿 원료를 가공하는 방식 등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자본과 기술력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에서 껌과 초콜릿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1967년 국내로 돌아온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이런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들도 고품질의 초콜릿을 맛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신 명예회장은 ‘제과업계의 중공업’으로 불릴 만큼 공정이 까다로운 초콜릿 생산을 위해 15억원을 투자해 최신식의 생산 공장을 지었다. 당시로서는 대규모 투자였다. 같은 해 미원은 스펀지 공장을 짓는데 2억원을 썼다. 무려 7배 이상이나 많은 금액을 초콜릿 공장에 투입한 것이다.

롯데제과의 초콜릿 공장에선 마이크로그라인드 공법으로 초콜릿을 생산했다. 국내 제과업계에선 처음 선보인 공법이다. 마이크로그라인드 공법은 모든 원료를 미립자 형태로 갈기 때문에 먹을 때 감촉을 부드럽게 하고 감미로운 향을 증폭시킨다. 커피전문점에서 향을 진하게 만드는 데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롯데제과는 마이크로그라인드 공법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 카카오빈을 그대로 들여왔다. 다른 제과업체들이 반가공된 원료를 들여와 완제품으로 만들던 때다. 롯데제과는 카카오빈을 직접 갈아 사용하면서 미세한 맛의 차이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최고 품질 추구, 시장 1위로 올라서다

롯데가 초콜렛 사업을 시작한 건 일본에서가 먼저다. 신 명예회장은 1961년 일본에서 초콜릿 사업을 시작해 당시 업계 1위였던 모리나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과는 대성공. 신 명예회장은 모리나가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 스위스의 초콜릿 기술자를 영입했다. 스위스는 고품질 초콜릿 생산국이자 최대 소비 국가이기도 하다. 부드러운 식감과 강한 풍미가 일품인 스위스 초콜릿은 세계 각국에서 소비되고 있다.

신 명예회장은 스위스 기술자 막스 브라크를 영입한 뒤 그에게 “생산원가가 높아도 상관없으니 스위스에서 만든 제품보다 더 맛있는 제품, 초콜릿 분야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를 들은 막스 브라크는 “모든 경험을 쏟아 내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가나초콜릿’이다. 가나초콜릿의 성공으로 롯데는 일본에서 메이지, 모리나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3대 제과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롯데제과는 1996년 또 한 번 업계를 선도할만한 기술을 들여온다. 유럽과 미국 등 초콜릿 본고장에서 사용하는 최첨단 공법인 BTC(Better Taste & Color Treatment) 공법을 도입한 것. 이 공법은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빈을 매스 형태로 가공하는, 세계 최첨단 제조기술로써 이 공법을 통해 고품질의 가나초콜릿을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있었다. BTC 공법으로 제조된 초콜릿은 기존 제품보다 초콜릿 고유의 향과 풍미가 더 진할뿐만 아니라 부드럽고 빛깔도 좋았다.

가나초콜릿은 출시 첫해 4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가나초콜릿의 판매가는 100원으로 400만개를 판 것이다. 이듬해인 1976년에는 가나초콜릿 열풍이 불면서 매출이 23억원까지 치솟았다. 불과 1년 만에 6배나 신장했다. 시장점유율은 50%에 달했다. 초콜릿을 구매한 2명 중 1명이 가나초콜릿을 선택한 셈이다.

가나초콜릿의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2014년 약 600억원을 기록한 가나초콜릿은 2015년 650억원, 2016년 7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올해는 800억원가량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장점유율 역시 순수초콜릿 시장에서 50%로 부동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카멜레온 상품 전략, 40년 인기 비결

가나초콜릿의 성공 배경으로는 최신 설비와 과감한 투자 못지않게 시대의 흐름에 맞춘 상품 전략을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가나초콜릿이 첫 선을 보일 당시엔 ‘가나초콜릿(밀크)’과 ‘가나초콜릿(카카오)’ 두 가지 뿐이었다. 롯데제과는 1980년대 들어 정통 초콜릿 타입인 ‘가나초콜릿(마일드)’과 빨간색 포장의 ‘가나디럭스’ 등으로 변신을 꾀했다.

최근엔 진한 카카오풍미와 신선한 우유의 풍미가 느껴지는 정통 밀크 초콜릿 ‘가나 밀크’, 카카오 풍미가 가득하고 입 속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정통 마일드 초콜릿 ‘가나 마일드’, 카카오 고유의 맛이 풍부한 정통 다크 초콜릿 ‘가나 프리미엄’ 등으로 품목이 늘었다.

더불어 가나초콜릿은 장수 상품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다른 업종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롯데제과는 지난해 편의점 업체 CU와 손잡고 ‘가나초콜릿 케이크’를 출시했으며 지난달에는 세븐일레븐을 통해 ‘가나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선보였다. 올 여름에는 도넛업체 크리스피 크림 도넛과 가나초콜릿 도넛 시리즈를 내놓기도 했다.

가나초콜릿의 콜라보레이션이 활발한 이유는 초콜릿 특유의 달콤함과 함께 유용성 덕분이다. 초콜릿의 지방분인 코코아버터는 인간의 체온보다 약간 낮은 온도에서 녹기 때문에 입에 넣기만 해도 녹는다. 쉽게 변형이 가능해 다양한 제품으로 바꿔 달콤함을 즐길 수 있다.

초콜릿은 건강 식품으로도 유용하다. 초콜릿의 성분 중에 폴리페놀이라는 물질은 암, 동맥경화 등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최근 학술 발표 및 논문에 발표되고 있다. 초콜릿의 성분 중 C.C.E는 알파파의 생성을 자극해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우울한 기분을 회복시켜 주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배성우 롯데제과 상무는 “가나초콜릿은 고품질의 초콜릿을 국민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롯데제과 노력의 산물”이라며 “앞으로도 맛과 영양, 풍미를 고루 갖춘 제품으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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