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금융위원회는 수년간 미뤄온 독자신용등급(자체신용도)을 이번에는 꼭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일반기업 독자신용등급 시행시기를 차기정부로 떠넘겼고 재정건전성 우려가 끊이질 않는 공기업은 제외하면서 실행의지에 의문을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4년 갈팡질팡하다 또 차기정부로 떠넘겼다
독자신용등급은 정부나 모(母)기업의 유사시 지원가능성을 배제하고 경상적인 지원만 반영해 개별기업의 독자적 채무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들은 이미 국내기업 평가때 공식등급인 최종신용등급과 함께 보조지표로 독자신용등급을 발표하고 있다. 독자신용등급은 시장에는 다각적 투자위험분석 근거를 제공하고, 기업에도 지배구조와 재무개선을 유도하는 순기능이 부각되면서 국내에서도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돼 왔다.
애초 금융위도 독자신용등급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2012년 금융위는 LIG건설과 진흥기업(효성) 등 일명 ‘꼬리 자르기’ 사태가 발생하자 신용평가 품질제고방안으로 독자신용등급을 도입키로 했다. 당시 발표때 첫 머리에 강조한 정책이었다. 현 정부들어서도 동양그룹 사태를 계기로 신용평가 개혁방안의 일환으로 독자신용등급을 도입키로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시장 환경을 이유로 여러 차례 유보하다가 지금까지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
독자신용등급 도입 유무는 법·시행령을 고치는 것이 아닌 암묵적인 지도(그림자규제)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는 곧 정책결정자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 내팽개쳐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미 현 정부가 지난 4년간 직접 증명한 과정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정책의 최종결제권자인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독자신용등급을 도입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자신의 임기 내에는 도입하지 않겠다는데 더 방점을 둔 셈. 익명을 요청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2017년부터 도입한다고 밝힌 금융회사 독자신용등급은 정부지원가능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최종등급과 차이가 있더라도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다”며 “정작 중요한 일반기업 시행시기를 다음 정부로 미룬 것인데 지금까지 독자신용등급과 관련한 금융위의 행보를 보면 또 한 번 정책의지에 의문을 남긴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가 신용평가시장을 언급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등급 인플레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일반기업 독자신용등급을 서두르는 게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자신용등급이 도입되면 신용평가회사 입장에서는 독자등급과 최종등급의 차이를 정교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지금보다 등급 상향(하향) 조정의 근거를 보다 정확히 제시해야한다.
공기업 독자신용등급 배제는 타협의 산물
이런 이유를 모르지 않을 금융위가 굳이 은행과 공기업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공기업에 대해 정부의 정보통제권을 놓지 않으려는 목적과 함께 신용평가 정상화보다는 공기업 관할부처의 이해관계를 더 많이 반영한 타협의 산물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공기업 독자신용등급에 대한 정부의 우려 지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공기업은 이미 국제신용사들로부터 최종등급과 최대 10노치 이상 차이나는 독자신용등급을 받고 있어 시장 충격은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독자신용등급 범위를 넓혀 신용분석의 툴을 더 정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공기업의 재정건전성을 유도한다는 순기능도 있기 때문에 도입을 더욱 적극 검토해야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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