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책 다시보기]노동개혁도 '미봉책' 그치려나

여의도 여야 정치권의 정쟁에 숨겨진 정책 이야기
  • 등록 2015-08-22 오전 8:00:00

    수정 2015-08-24 오후 6:56:40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3주 전 이 코너를 통해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을 잠깐 언급했지요. 따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면서요. 지난 한주 정치권에서 ‘재벌개혁’이 화제가 됐으니 이 이야기를 마저 나눠보면 좋겠네요.

새정치민주연합이야 재벌개혁을 말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법인세율 인상이 당론일 정도이니깐요. 특이한 건 새누리당까지 대기업집단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최근 당 공개회의에서 “문제가 있는 재벌총수는 올해 국정감사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했지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새누리당은 원래 국감에서 대기업 문제를 진정성있게 다루려면 사안을 잘 아는 최고경영자(CEO)나 담당 임원을 불러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기 때문이지요. 원내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도 “올해는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최근 여의도 국회에 부쩍 늘어난 대기업 대관인력

‘쇼’에 강한 정치인들의 행동은 다 이유가 있겠지요. 그에 앞서 대기업집단의 총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2009년부터 약 4년간 삼성·SK·LG 등 대기업집단을 주로 취재했는데요. ‘총수’ ‘오너’의 무게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정도의 표현이면 될까요. 직장인으로 아무리 성공해도 오너를 넘을 수는 없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대기업집단의 대외협력 담당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도 오너 일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2년 전 쯤이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A 대기업집단 총수 바로 아래서 그룹 전체를 조율하는 B 부회장을 ‘2인자’로 표현해 기사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곧바로 관계자들에게서 전화가 왔지요. 요지는 이랬습니다. “B 부회장께서 2인자라는 표현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십니다.” 그러니까 1인자인 총수만 있지 2인자라는 건 없다는 겁니다. 월급쟁이 출신인 그가 부회장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자신의 분수를 정확히 알았기 때문 아닐까요.

최근 여의도 주변에는 대기업집단의 대관(對官) 인력들이 유난히 많은 것 같습니다. 목적은 비슷합니다. 총수를 국감장에 세우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지요. 대기업집단의 최고 자산인 총수가 여의도에서는 최대 약점인 셈입니다.

새누리당이 갑자기 재벌개혁을 얘기하는 건 이 약점을 파고든 겁니다. 자신들이 주도하는 노동개혁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요. 국감장에 서기 싫으면 일자리 창출 등에 협조해달라는 뜻이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매 정권마다 총수들이 우루루 청와대에 몰려가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요.

노동개혁 위한 조급한 재벌개혁 카드…미봉책 아닐까

문제는 정치권과 대기업집단의 이런 관계가 실제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저는 부정적입니다. ‘박정희 시대’의 향수는 짙게 배어있는데, 그 진정성은 자꾸 의구심이 듭니다. 오히려 ‘아직도 이러고 있나’ 싶을 정도로 비애감이 들기도 합니다.

일단 새누리당의 재벌개혁이 주먹구구식이라는 게 눈에 보입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맞춰 필요할 때만 대기업집단을 골라서 때린다는 말이지요. 또 서비스업 발전에 명운을 거는 것 같더니, 어느새 제조업도 살려야 한다고 합니다. 서비스업은 필연적으로 ‘질 낮은’ 일자리가 많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일까요. 오락가락합니다. 노(勞)와 사(使)를 한자리에 앉혀놓고 어떻게든 노동개혁에 합의했다고 사진 찍는 게 최우선과제 같이 보일 정도입니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닌데, 조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요.

그 후유증은 지난 공무원연금 개혁 때 이미 드러났습니다. 새누리당은 합의에 쫓겨 갑자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끌고 들어왔지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당시 합의를 주도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부터 연금은 이젠 말도 안 꺼내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말로만 국가를 위하지, 결국은 잇속 챙기기 라고 비판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여야가 합의만 했다고 해서 그게 공적이 되는 게 아닌데 말이지요.

대기업집단이라고 바보는 아닐 테지요. 적당히 구색만 맞추려는 흔적이 보입니다. 벌써부터 삼성 등에서 발표한 대책이 ‘인턴 늘리기’라는 비아냥이 들립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지요. 정치권이 윽박지른다고 갑자기 당초 계획했던 채용에서 확 늘리기는 어려울 겁니다.

여권이 추진한다는 노동개혁이 우려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표심(票心) 때문에 내년 총선 전, 즉 올해 안에는 꼭 끝낸다고 하네요. 보수정당이 재벌개혁까지 한다고 하니 급하긴 급한 것 같습니다. 저는 새누리당이 벌써부터 지고 들어간 느낌이 듭니다. 국민연금까지 끌어들였다가 손을 놓아버린 ‘미봉책’ 공무원연금 개혁이 자꾸 떠오릅니다.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 혹은 정책을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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