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자진사퇴로 종지부를 찍은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신임 예술감독 겸 단장의 자격 논란 파문은 우리 예술계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본인이 “일신상의 사유로 다 내려놓고 이만 물러나겠다”고 밝혔지만 그것이 개인의 진퇴 문제로 끝날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국의 임명 발표 이후 사퇴 표명에 이르기까지 50여일 동안 오페라계는 온통 홍역을 치러야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논란의 소지를 제공했다는 사실부터 되짚어봐야 한다. “신임 단장이 현장 경험이 많아 세계 오페라계의 흐름을 파악하는 안목과 기량을 갖췄다”는 판단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오페라계에서 “현장 경험이 없는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하고 나섰던 것이 공연한 반발은 아니었다. 무려 9개월째 공석이던 자리를 메우면서 굳이 이런 식으로 처리해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 단장이 문체부에 제출한 이력서가 허위로 기재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검찰 고발 사태에 임명권자인 김종덕 문체부장관에 대한 직무유기 논란까지 제기됐던 마당이다. 경력의 허위 기재에 대해 ‘실무자의 실수’라거나 ‘오타’(誤打)라는 해명도 너무 유치했다. 결국 한 단장 자신의 의욕은 컸으나 동료 예술인들의 동의를 받아내는 단계에서부터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현재 진행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새 관장 공모 절차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이런저런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최근 이뤄진 영화진흥위원장과 저작권위원장, 아리랑TV 사장 등의 임명을 놓고도 뒷얘기들이 오가는 이유를 당국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메세나 활동에 기여한 재계의 주요그룹 총수들과 만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절의 ‘메디치 가문’을 거론하며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을 요청했다. 문화예술 분야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재계의 지원과 관심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부터 자꾸 논란을 빚으며 동떨어지게 움직여서는 아무리 투자를 해도 깨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