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대신 송별회'..장기불황에 우울한 연말

기업 비용절감에 '자린고비형' 송년회 늘어
공연관람·오찬 송년회 등 술없는 송년회 확산
공무원 청사이전에 직원들 흩어져 엄두도 못내
  • 등록 2012-12-17 오전 8:40:00

    수정 2012-12-17 오전 9:05:49

[이데일리 김정민 기자]매년 마초적 건배사로 여직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김 부장. 올해 부서 송년회에서는 ‘남존여비(男尊女卑)’를 외쳤다. 황당해 하는 부서원들 앞에서 김 부장은 “남존여비, 남자의 존재 이유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다. 여직원 여러분 앞으로 잘 모시겠습니다”라는 멘트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슈퍼스타K의 성공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경연식 송년회, 비용절감을 위한 자린고비형 송년회 등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한 송년 모임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특히 술자리 회식을 봉사활동과 공연관람 등으로 대체한 ‘무알콜’ 송년 모임이 확산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임직원 270명은 지난 6일 술자리 송년회 대신 인근 독거노인 71가구를 방문, 저녁 식사를 같이했다. SPC그룹은 임직원들이 함께 헌혈하는 ‘헌혈송년회’를 열었다. 임직원들은 자신의 헌혈증을 직접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하는 행사도 가졌다.

술 대신 문화 향기에 취하는 송년모임도 많아졌다. 삼성화재는 12월을 술 없는 회식기간으로 정해 ‘착한 회식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그룹 차원에서 진행 중인 절주 운동인 ‘119(1가지 술을, 1차만 마셔서, 오후 9시 전에 끝내기)’ 캠페인의 일환이다. 매주 기발한 아이디어로 회식한 부서 3곳을 선정해 회식비를 지원한다. 마술공연, 심야영화 관람, 볼링대회 등이 인기다. SK마케팅앤컴퍼니(M&C) 임직원들은 올해 대학로에서 장진 감독이 연출한 ‘서툰사람들’을 함께 관람하며 송년 행사를 대신했다.

직장인 김모(여·37)씨는 “결혼한 여직원이 많은 부서에서는 아예 점심시간에 송년모임을 갖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와 함께 길어진 불황에 허리띠를 졸라 메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자린고비형’ 송년회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감원 한파에 송년회가 송별회로 바뀐 곳마저 있다.

인터넷쇼핑몰 11번가는 지난해 대학로의 바를 빌려 직원들의 장기자랑을 곁들인 송년파티를 열었지만 올해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회사 앞 오리고기집에서 간단히 끝내기로 했다. 또 한 광고대행업체는 작년까지 전사가 함께 했던 송년회를 각 본부별로 진행하기로 했다. 호텔 홀을 빌려서 하는 비용이 부담돼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오모(남·29)씨는 “회사에서 회식비 지원을 중단해 올해 송년 모임을 위해 직원들이 3만원씩 걷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선을 앞둔 정부부처와 공기업들도 조용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MB정부 들어 ‘일하는데 끝이 어디있냐’며 종무식마저 없어졌다”며 “송년회도 튀지 않게 외부에 알리지 않고 부서별로 몇몇이 조용히 한다”고 전했다.

공무원들 또한 마찬가지다. 세종시 이전으로 이사짐 꾸리기에 바빠 송년회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작년에는 연말에 다 같이 과천 인근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했지만 지금은 직원들이 서울, 대전, 오송, 조치원 등으로 흩어져 같이 저녁 먹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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