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떠올리면 요즘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자칭 ‘국제가수’ 싸이다. 지난 11일 독일에서 열린 MTV 유럽 뮤직 어워드에서 각국의 기자들과 영어로 기자회견을 했다. 이에 앞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미국 유학 시절 부모님 몰래 진로를 바꾸고 힘겨웠던 과정 등을 강연하기도 했다.
싸이가 전 세계적인 유행을 일으킨 ‘강남스타일’의 배경에는 그의 영어 실력도 한몫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북미 지역 팬들에게 자신을 알렸다. 내로라하는 스타들과 갖가지 토크쇼에 출연해 유머를 과시했다. 물론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말춤을 가르치며 ‘Dress Classy Dance Cheesy’ (옷은 고급스럽게, 춤은 저렴하게) 라는 말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리듬감 넘치는 이 말은 금세 싸이의 트레이드마크가 돼 삽시간에 팬들 사이에서 패러디가 됐다.
싸이의 성공을 보면서 영어 몰입 교육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불거지는 모양이다. 몇몇 학부모는 세계 무대에 서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선 싸이처럼 영어가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한국어를 채 떼기도 전인 유치원에서 영어 발음을 배우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OO에 오면 싸이만큼 영어 한다’는 전단지도 만났다.
외국 여행을 나가면 실상 영어를 제대로 쓸 일이 별로 없다. 공항 티케팅이나 호텔 체크인이나 아울렛 쇼핑을 하는 데 중학교 영어 실력이면 충분하다. 쓸데없이 발음을 굴리는 대신 묵음마저도 소리 내는 ‘정직한’ 영어가 오히려 쓸만할 때도 있다. 가끔 말이 안 통하면 만국공통어인 손짓 발짓을 동원하면 된다.
아침에 만난 소녀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싸이의 성공도, K팝의 성공도, 심지어 아이폰의 성공도 다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 덕분이다. 영어 발음을 아침마다 배우는 열정과 시간을 감성을 키우는 데 쏟으면 어떨까. 영어는 국제기구에서 근무하지 않을 바에야 싸이처럼 상대방과 공감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도 영어 ‘발음킹’이 되고 싶다면 한때 SNS에서 유행한 법칙을 따라해보길 바란다. ‘Apple’(애아뽀으), ‘Banana’(브내아느어), ‘Tomato’(틈에이러), ‘Help’(해협), ‘Musical’(미유지클), ‘Notebook’(넛븤)… 혀 꼬이는 건, 책임 못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