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당잡힌 청춘]①이틀은 `대학생` 사흘은 `일용직`

[르포]신용유의 대학생의 `고단한 하루` 동행
"잦은알바→낮은학점→휴학→지각취업..악순환 구조
  • 등록 2012-05-14 오전 8:29:39

    수정 2012-05-16 오전 8:56:51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김회복(30·가명)씨는 아직 대학생이다. 개인 사정과 함께 학자금과 생활비 문제로 휴학을 거듭하다 졸업이 늦어졌다. 대학생활만 10여 년째다.   2년 전 학업과 함께 일을 병행하다 결국 신용유의자(신용불량자)가 됐다. 하루 3~4개의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이 마저도 여의치 않아 손을 댄 연 이자 10~20%에 달하는 카드론이 결국 김씨를 신용유의자로 만들었다. 지금은 신용회복위원회의 도움으로 신용유의자 신세를 면했지만 그를 짓누르는 빚은 여전하다. 그는 빚을 갚기 위해 평일 5일 중 3일은 일용직 노동자가 된다. 지난 10일 그와 함께 일용직 노동자가 돼 고단한 삶을 직접 느끼며 들여다보았다. 

▲ 대학생 김회복 씨가 냉동창고에서 고기박스를 나르던 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전 7시 반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OO냉장`. 수입된 소·돼지고기를 검역한 후 도·소매상로 출고시키는 곳이다. 그는 여기서 6개월째 일용직 노동을 하고 있다. 힘겨운 일이지만, 소개비 9000원을 제하고 받는 8만1000원은 그에게 값진 돈이다.

업무는 간단했다. 입고된 고기박스를 차량에서 내려 창고에 옮기고, 검역을 마친 고기는 트럭에 실어 출고시키면 된다. 머리를 쓰진 않지만, 몸이 고되다. 20~35kg이나 되는 고기박스 4000~5000개를 김씨와 기자를 포함해 6명이 함께 옮겼다.

8시가 되자 냉동창고에 있던 고기박스가 무섭게 들이닥친다. 그의 손도 발도 정신없이 바빠진다. 1톤 차량에 박스 100여개가 순식간에 채워진다. 세로로 10개 정도 쌓이면 자기 키보다 높다. 만만치 않은 무게지만 김씨는 거뜬히 들어 올렸다. 송골송골 맺혔던 땀이 어느새 뚝뚝 흘러내렸다. 그가 입은 옅은 회색빛 민소매 티가 점점 짙어졌다.

"반년 동안 체중이 6~7kg 빠졌어요. 체지방도 15%나 감량됐더라고요." 그는 나름 `몸짱`이다. 팔, 다리 근육이 운동선수 못지않게 튼실하다. "운동요? 따로 필요 없어요. 하루에 8시간씩 `극한 운동` 하잖아요"며 씁쓸하게 웃는다.

▲ 층층이 쌓여있는 고기박스. 하루에 수천개는 옮겨야 한다.
점심 및 간식시간 빼고는 정말 쉴 틈이 없었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어도, 밀려 나오는 물량에 다 피지도 못하고 내려놓는다. 오후 5시 반. `드디어` 일이 끝났다. 그의 어깨는 아침보다 더 축 늘어졌다.

이렇게 일하고 공부할 여력이 있을까? 처음해 본 작업이라 팔을 쉽게 들기도 어려울 정도로 욱신거렸다. 하지만 김 씨는 아직도 힘이 남아 있는듯 했다. "처음엔 정말 공부할 엄두가 안 났어요. 화장실 갔다가 볼일보고 일어서기도 어려울 정도로 근육통에 시달렸는데요. 펜조차 들기가 만만치 않았어요."

김씨가 집에 도착하면 7시가 넘는다. 가끔은 야간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까지 한다. 김씨는 자신을 `대학생`이라기 보다는 일용직 `노동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대학생활은 어쩜 사치일 수 있다. 

그는 화요일과 금요일만 학교에 간다. 졸업반이지만 학점이 모자라서 여섯 과목을 꽉꽉 채워 듣는다. 예습·복습할 여유도 없다. 그러니 학점도 그리 좋지 않다. 평균 B학점 넘으면 신청할 수 있는 국가장학금도 그와 거리가 멀다. "가끔 돈 걱정 없이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부럽기도 해요. 어쩔 수 없죠."    그는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2000년에 대학에 입학했지만, 과가 적성이 맞지 않아 이내 그만뒀다. 제대 후 2006년, 다시 학업을 시작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학비는 2배만큼 올랐고, 아버지는 명예퇴직을 하셨다. 학비랑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했다. 쌍끌이 어선을 타고, 대리운전·보도방 알바까지 뛰었다.

그래도 학비에 생활비까지 쪼들리자 그가 꺼낼 수 있는 카드는 `휴학`뿐이었다. 중국집에서 하루 12시간 일하며, 한 달에 200만원씩 벌었다. 하지만 장사가 안 된 사장은 임금을 체불했다. 새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워 카드 돌려막기로 연명했다. 어느새 빚은 1000만원을 넘어섰다. 연체가 이어지자 신용유의자 신분이 됐다.

빚 갚으려고 돌고 돌다가 찾은 곳은 신용회복위원회. 이자를 면제받고, 8년간 월 10만6950원씩 갚기로 했다. 일용직 노동일을 하면 월 90만원은 번다. 이자 갚고, 생활비 쓰고, 남은 돈은 다음 학기 학자금 준비자금으로 모아둔다.

▲ 자기 키보다 높은 곳까지 고기박스를 올리고 나면 펜을 손에 들기 어려울 정도로 욱신거린다.
그는 전공을 살려 건축설비 회사에 취직하려 한다. 배관·전기·위생설비 등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유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건축설비 관련 자격증을 따야 취업에 유리하지만, 시간이 넉넉지 않다. 토익, 학점 등 고(高)스펙을 요구하는 회사는 관심사에서 빗겨 있다. 신용유의자가 된 기록도 마음에 걸린다.

"신복위 덕분에 신용유의자를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머네요. 원금도 꼬박꼬박 갚아야 하고요. 아직 한 학기 남았으니 장학금도 받도록 일도 공부도 둘다 잘 해야겠죠." 그는 힘없는 미소를 지은 채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용어설명 -신용유의자: 금융회사로부터 받은 대출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하거나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받은 학자금 대출을 6개월 이상 연체하면 신용유의자로 등록돼 제도권 금융회사와의 거래가 제한된다. 지난 2005년 4월까지는 `신용불량자`란 용어를 써 왔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불이익이 지나치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신용유의자`, `금융채무불이행자` 등으로 순화했다.   ▶ 관련기사 ◀ ☞[저당잡힌 청춘]②대학생 부채, 통계조차 없다 ☞[저당잡힌 청춘]③"반값등록금 해봐야 알바 몇 개 덜 하겠죠" ☞[저당잡힌 청춘]④고액 등록금-취업난이 낳은 `악몽` 대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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