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환 박동현 정윤지 기자] “택시타고 가긴 애매하고 집이 언덕길에 있어 걷기 힘들어 탔어요.”
지난 5일 ‘불목(불타는 목요일)’에 만난 20대 남성 이모씨는 전동킥보드에서 내리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의 얼굴은 만취한 듯 벌겋게 상기돼 있었고 술 냄새가 나기도 했다. 술을 마셨냐는 질문엔 부인하던 이씨는 “사실 술 마시고도 탄 적이 많다”며 “시속이 20㎞ 정도인데 어떻게 음주운전인가. 조심히 타고 있다”고 말했다.
이데일리가 서울 도심 곳곳을 살펴본 결과 ‘혁신’으로 불렸던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폭탄’처럼 이용되고 있었다. 이날 오전 학원가에서는 면허가 없는 청소년들이 학원가에서 다인 탑승을 한 채 차에 치일 뻔하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고 늦은 오후에는 비틀거릴 정도로 술을 마신 뒤 전동킥보드에 오른 시민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 헬멧도 쓰지 않은 채 위험하게 전동 킥보드를 타고 있는 모습(사진=이데일리 김형환, 박동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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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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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PM 탑승한 만취자들…사고날 뻔 하기도이날 서울 강남역·홍대·건대 인근에서는 모임을 마친 시민들이 귀가를 목적으로 PM을 찾는 경우를 쉽게 찾아 수 있었다. 현행법상 반드시 써야 하는 헬멧을 착용한 이들은 찾을 수 없었고 인도주행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PM을 탑승하고 있어 차량이나 오토바이의 경적을 전혀 듣지 못해 사고가 날 뻔한 아슬아슬한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다.
| 지난 5일 늦은 오후 인파가 가득한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한 시민이 헬멧을 쓰지 않은 채 전동킥보드를 타고 있다. (사진=김형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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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술을 마신 뒤 PM의 핸들을 잡은 이들은 연신 비틀거려 금방이라도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실제 붐비는 인파 사이사이를 가던 PM 운전자가 술에 취해 입간판에 부딪히기도 했다. 인파가 붐비는 골목에서 오토바이와 동선이 겹쳐 서로 급정거하는 아찔한 장면도 연출됐다. 만약 사고가 났다면 그 여파로 인근에 밀집한 시민들도 다칠 우려도 커 보였다.
음주 후 운전대를 잡은 이들은 PM 운전이 ‘음주운전’이라는 점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건대 인근에서 만난 A(24)씨는 “소주 한 병 정도 마셨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타면 괜찮다”며 “빠르고 편하게 집에 갈 수 있고 단속도 사실 없다 보니 자주 탄다”고 말했다. 강남역 인근에서 만난 30대 남성 임모씨 역시 “그리 취하지도 않고 (전동킥보드 운전에) 익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타게 됐다”며 “(목적지가) 바로 앞이니 괜찮지 하는 생각에 탑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5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학원가에서 청소년 4명이 하나의 전동킥보드를 타고 있다. (사진=박동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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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가선 무면허 라이더 ‘가득’…4인 탑승도성인들뿐만 아니라 운전면허가 없는 청소년들 역시 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PM을 탑승하고 있었다. PM을 대여하기 위해서는 도로교통법상 만 16세 이상 원동기 또는 운전면허를 소지해야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무면허 상태로 운전하고 있었다. 이들은 부모 또는 성인인 가족의 명의를 도용하거나 면허 없이도 대여할 수 있는 업체를 이용해 PM을 대여하고 있었다.
이 같은 편법으로 PM을 빌릴 수 있는 학생이 적다 보니 학원가에선 2인 탑승은 기본이었고 최대 4인 탑승까지도 볼 수 있었다. 무면허인 이들은 대부분 인도에서 헬멧을 쓰지 않은 채 전동킥보드를 탔고 발을 좌우로 뻗어 장난을 치는 등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목동 인근의 한 중학교 앞에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청소년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차가 많이 다니는 사거리 교차로를 신호도 지키지 않고 가로질러 가기도 했다. 그는 빨간불에도 차들 사이로 무단횡단하면서 차 좌우를 왔다갔다하는 이른바 ‘와리가리’로 운전하기도 했다.
| 지난 5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역 일대에서 경찰들이 사고 예방과 시민 안전확보를 위한 전동킥보드 등 PM 관련 현장 단속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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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하다 다치면”…부담 느끼는 경찰들이같이 위험한 상황에서 PM을 운전하는 시민들을 본 경찰들은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실제로 이날 이데일리가 관찰하는 하루 종일 순찰차가 수차례 지나갔지만 전동킥보드 헬멧 미착용, 인도 주행, 다인 탑승 등에 대해 제지하지 않았다. 이들은 단속하려고 다가가다 도주 과정에서 다칠 경우 경찰이 떠안아야 할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B 경감은 “만약 헬멧 미착용으로 과태료 처분을 하려 따라가다가 도주하던 시민이 다쳐봐라. 바로 경찰에 고소하게 된다”며 “도망가다 다칠 경우 우리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 크다”고 주장했다.
번호판이 없는 점도 PM 관련 수사를 더디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번호판이 없기 때문에 경찰 자체 수사로는 용의자를 특정하기도 어렵고 PM 업체에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품이 든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경찰서의 교통과장은 “번호판이 없다 보니 폐쇄회로(CC)TV만으로는 용의자가 누군지 알 수 없고 PM 업체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며 “워낙 사건이 많아 PM 업체에서 도와줘도 수사가 더디게 진행될 수 밖에 없고 수사 인력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