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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민심을 표출한 광장을 축제의 장으로 만든 일등 공신은 다양하고 기발한 풍자다. 풍자와 해학은 운동권과 시민단체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집회와 시위를 일반 시민들도 마음 편히 다가갈 수 있는 민주주의 축제로 바꿔놓은 일등공신이다.
국민들을 실소하게 한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문과 길라임, 비아그라 등 시민들을 어이없게 한 청와대발(發)소재가 끊이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10월 29일 처음 열린 촛불집회의 풍자 키워드는 ‘꼭두각시’다. ‘비선 실세’ 최순실(60·구속기소)씨가 대통령을 대신해 연설문을 작성하고 국가 정책 수립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최초로 불거진 뒤였다.
당시 집회에는 박 대통령 가면을 쓴 학생이 모형 TV에 서서 ‘1차 대국민 사과문’을 낭독하면 최씨 가면을 쓴 다른 학생이 이 학생과 연결된 실을 잡아당기면서 인형극 ‘마리오네트’를 연출했다. ‘이게 나라냐’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등장했고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접한 만큼 표현은 다소 무거웠다.
‘배터리도 5%면 바꾼다’ ‘지지율도 실력이야! 니 부모를 탓해’ 등 웃음을 자아내는 문구가 담긴 피켓이 등장했다. ‘민주묘총’과 ‘전견련’, ‘트잉여운동연합’ 등 이색깃발 각축전이 벌어졌다. 벌레를 만지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장수풍뎅이 연구회’ 깃발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 이름 ‘길라임’을 가명으로 쓰며 차움병원 VIP시설을 이용했단 보도가 나온 뒤 시민들은 드라마 남자 주인공 현빈의 트레이드 마크인 반짝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와 “길라임씨 하야하세요”를 외쳤다. “촛불은 바람불면 꺼진다”는 김진태 새누리 의원의 발언 이후 촛불집회에 방풍 촛불과 LED 촛불, 횃불이 등장했다.
5·6차 집회에선 상·하위 문화의 조화가 절정에 달았다. 등에 노란 종이 돛단배를 올리고 꼬리엔 노란 리본을 단 풍선인 ‘세월호 고래’가 광장의 100만 인파 위를 헤엄쳐 다녔다. 제작자인 건축가 김영만(54)씨는 “더 많은 국민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잊지 말고 기억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튿날인 7차 집회에선 박 대통령에 대한 풍자가 더 과감해졌다. 꽃 스티커로 물들었던 경찰 차벽은 박 대통령이 철창에 갇힌 모습의 그림과 ‘이러려고 의경했나’ 등의 글귀가 적힌 풍자 스티커 등으로 도배됐다. 한 시민은 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의 인형탈을 쓴 채 행진 대열에 참여했다. ‘박하(박근혜 하야)사탕’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푸드트럭도 눈에 띄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위 주체가 있었던 과거의 운동권 집회에서 모두가 주체가 된 지금의 시위에서는 젊은 세대 특유의 명랑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화가 결합돼 다양한 풍자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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