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특공대의 酒첩]"난 어제도 소맥으로 달렸다"

  • 등록 2017-04-01 오전 7:50:59

    수정 2017-04-16 오후 2:02:45

[이데일리 김태현 기자] 어제도 ‘소맥’(소주+맥주)으로 출렁이는 배를 부여잡고 길거리를 방황 했다. 눈 앞은 빙빙 돌고 속은 더부룩하다. 왁자지껄 즐거운 술자리도 그때뿐 ‘부어라 마셔라’ 분위기에 취해 마신 술은 개미처럼 머릿속을 기어 다닌다. 숙취에 머리만 아프다.

물론 소맥 잘못은 아니다. 술이 무슨 잘못인가. 죽어라 마시는 사람이 문제지.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직장인에게 4000원 짜리 소주, 맥주만 한 술도 없다. 지글지글 삼겹살에 소주 한잔, 바삭한 후라이드치킨에 맥주 한잔 쳇바퀴 같은 일상에 이만한 활력소도 없다.

그래도 어딘가 허전함이 남는다. 요즘 더 그렇다. 삼겹살에 소주를 마셔도, 치킨에 생맥주를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다. 아마 술자리에도 채워지지 않는 일상탈출에 대한 욕망 탓이리라.

언제부턴가 술자리도 지루한 일상이 됐다. 대학생이 되고 아버지와 바에서 처음 맛본 위스키의 경험, 여자친구와 이별하고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셨던 소주의 쓴맛은 사라진 지 오래다.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술자리 때문이다. 메뉴는 1차 고기에 소맥, 2차 골뱅이·치킨에 맥주, 3차 마른 안주에 소맥. 매번 바뀌지도 않는다. 만나는 사람이나 하는 얘기도 거기서 거기다. 사회 초년생 때는 여자 얘기, 나이가 꽉 찬 지금은 결혼 얘기다. 매번 되풀이 하는 데자뷔 같다.

그런 내게 탈출구가 된 건 ‘우리술’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우선 우리술는 종류가 많다. 주로 차례주로 마시는 청주가 있는가 하면 흔히 마시는 희석식 소주와는 급을 달리하는 증류식 소주가 있다. 이외에도 수백 가지의 우리술이 있다. 등록된 것만 800여 가지다.

처음 마셔본 박재서 명인의 안동소주는 소주에 대한 편견을 한방에 깨부쉈다. 은은한 꽃향기에 목넘김까지 부드러웠다. 옥로주, 솔송주, 문배주, 오메기술, 감홍로 등 앞으로 마셔볼 우리술은 차고 넘친다. 숨은 가양주까지 맛보려면 한평생 술만 마셔도 모자란다.

안타까운 건 맛보기 쉽지 않다는 거다. 양조장 대부분이 지방에 머물러 있는데다 양도 많지 않아 대부분 그 지역에서 소비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주점에서 판매는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옥로주 맛 좀 보자 주점에 가봤지만, 없다는 말에 허탕치고 돌아온 일도 허다하다.

‘차라리 이럴 바에 가서 마시자’ ‘어차피 인생은 짧고 마셔볼 우리술은 많다’, ‘마냥 기다리기엔 시간이 아깝다’,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마셔보자’. 우리술 마니아 3명은 의기투합했다.

이번 연중 기획에 우리술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담아볼까 한다. 특히, 우리술이 가지고 있는 역사나 의미에 대해 다뤄볼 생각이다. 최근 우리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술 리뷰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대부분 우리술 맛이나 어울리는 안주에 대한 설명에 그친다.

그러나 우리술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지역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재’다. 우리술 한방울 한방울에는 술을 만든 사람의 인생과 재료들을 만든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 있다. 이를 알지 못하고는 우리술을 설명할 수 없다.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아야 맛도 설명할 수 있다.

우리술 맛부터 우리술이 탄생한 지역에 대한 이야기까지 함께 담아볼 생각이다. 우리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주막특공대의 주(酒)첩’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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