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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커서 배삼룡·이기동이 되거라.” 배우 손병호(51)가 세 살 때부터 듣고 자란 말이다. 손·발짓해가며 노래와 춤추는 걸 유독 좋아했다. 덕분에 소년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몰렸다. 중학교에서는 ‘모창 스타’로 불렸다. “병호 노래 듣고 수업하자.” 선생님 말씀이 떨어지면 장난기 넘치는 소년은 혜은이와 조용필 노래를 간드러지게 불렀다. “꽃피는 동백섬에~” 인터뷰 차 만난 손병호가 옛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주저 없이 조용필 흉내를 냈다.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노래하는 모습이 제법 비슷하다. “사실 어려서는 이소룡 같은 액션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하하하.” 영화를 보고 오면 극중 배역 흉내를 잘내 ‘모션 손’이란 별명도 생겼단다. 그를 만난 시간은 오전 10시40분. 드라마 밤샘 촬영으로 한잠도 못 자고 연극 연습하러 가는 빠듯한 일정에도 그는 활력이 넘쳤다. “내가 원래 ‘에너자이저’다. 8년 동안 매주 산 타며 다진 체력 덕이기도 하고.”
손병호가 대학로에 돌아왔다. 8월 11일까지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3관에서 공연하는 ‘8월의 축제’가 무대다. 오랜만에 연극이다. 2005년 ‘클로저’ 이후 8년 만이다. ‘8월의 축제’는 딸을 잃은 장인과 사위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창작극이다. 손병호는 장인 광현을 연기한다. ‘천년의 수인’ ‘동경에서 온 형사’ 등 연극에서 주로 센 캐릭터 연기로 주목받았던 그다. “무대에서 이렇게 잔잔한 캐릭터는 나도 처음이다. 그런데 연기를 하다 보니 스며든다는 느낌을 받는다.” 부성애 등 가족 얘기라 흔해 보일 수 있지만 울림이 크단다. “실제 두 딸의 아빠다 보니 연기를 할 때면 눈가가 촉촉히 젖고 목이 메기도 하더라.”
“즐겁게 살고 싶다.” 손병호가 들려준 인생의 화두다. 2001년 결혼 전까지 월 10만원 남짓으로 살면서도 샛길로 빠지지 않은 이유다. “이사만 스무 번 넘게 다녔다.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는 극단에서 잠도 숱하게 잤다. 자취하는 친구들 집에서 ‘메뚜기 생활’도 했다. 어디서 자는 게 뭐가 중요한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로 향해 가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아는 게 중요하단 소리다. 그의 철학은 두 딸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큰딸 이름은 알 지(知)자에 나 오(吾)자를 썼고, 둘째 딸은 알 지 자에 나 아(我)자를 썼다. 모두 ‘나 알지?’란 뜻이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