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지난달 28일 청와대 춘추관 1층 남자화장실에 들어선 기자는 낯선 기분을 느꼈다. 청와대 출입 14개월 동안 매일 마주쳤던 ‘4대강 자전거길’ 사진 액자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첨성대, 농악 등 우리나라 명소 및 전통문화 관련 사진으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춘추관에서 이명박 정부가 남긴 지난 5년 간의 흔적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가장 먼저 사라진 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진들이다. 2층 구내식당 입구에 걸려있던 ‘2016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순간’ 사진은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이 전 대통령이 이건희 회장, 김연아 선수 등과 함께 두 손을 들어 환호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 이 전 대통령의 사진들이 있던 자리엔 액자가 걸렸던 자국만 남았다.
이달 들어선 청와대 출입기자단 인터넷 브리핑룸인 ‘e-춘추관’에서 이명박 정부 관련 자료는 모두 삭제됐다. 보도자료는 물론 사진자료, 브리핑 기록, 풀 기사 등을 더 이상 열람할 수 없게 된 것이다. e-춘추관 홈페이지 웹디자인도 기존에는 청와대를 상징하는 파란색 위주였지만, 지금은 새누리당의 색깔인 빨간색 비중이 늘었다. 청와대의 한 행정관은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남아있던 직원들도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 떠나고 있다. 일부 새누리당 출신 인사들이 그들의 자리를 채우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기자실 자리 배치도 다시 이뤄질 전망이다. 현재 자리 배치는 ‘MB 맨’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출입기자단과 협의해 정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종합편성채널 기자들의 자리가 새로 생길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춘추관에선 이명박 정부의 흔적이 하나둘씩 지워지고 있지만, 정작 새 정부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내각은 그대로다. 춘추관 화장실의 ‘4대강’ 사진을 떼어낸 속도로 조각을 일찌감치 마무리했더라면 국회 인준 절차도 지금보다는 빨라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