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적정 의대 정원은 몇 명인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가? 이에 답하려면 먼저 사실관계를 밝혀야 하고 다음은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사실관계 규명은 전문가 집단의 역할인 반면 이해관계 조정은 정치권이 할 일이다. 정치권의 한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므로 오늘은 전문가 집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까 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한탄강 댐 관련 회의가 생각난다. 당시 댐의 피해자인 강원도는 소규모 댐을, 댐을 지을 정부는 대규모 댐을 선호했다. 폭우 가능성이 높을수록 댐을 크게 지어야 하므로 결국 기상학자 의견을 듣기로 했다. 그런데 정부 추천 학자는 폭우 가능성이 크니 댐이 커야 한다고 했고 강원도 추천 학자는 그 반대 이야기를 했다.
전문가 집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 있는 전문가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객관적인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정책결정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저해한다. 둘째, 늘 기계적 중립만 지키는 전문가이다. 한쪽이 옳다고 판정하는 것은 많은 연구와 용기가 필요한 부담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거나 양쪽이 다 잘못이라고 하면 그런 부담이 없어진다. 이런 학자들도 국가적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책사안에 대해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진실을 밝히고 대안을 내는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있는가? 정당이나 기업연구소는 이해관계에서 초월하기 어렵다. 국책연구소는 정부 입장을 대 놓고 반대하기 어렵다. 대학 교수는 재임용을 위한 연구에 바빠 정책을 고민할 시간이 없거나 생각이 있어도 개인으로서 한계를 느낀다. 민간 싱크탱크가 대안이나 역시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재원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과거에 비해 민간 싱크탱크 지원을 꺼리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상근 연구인력은 고사하고 소수의 상근 사무처 인력 유지에 급급한 곳이 많다. 원장도 대부분 비상근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에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내기가 어렵다. 많은 사람이 “한국의 브루킹스 혹은 헤리티지를 만들겠다”며 싱크탱크 운동을 시작하였으나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이다.
이렇게 민간 싱크탱크의 역할이 미미하다 보니 후원을 받지 못해 재정이 취약하고 그 결과 사회에 충분한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를 바꾸려면 싱크탱크간 연대가 필요하다. 주요 사안마다 여러 기관이 비슷한 목소리를 내면 언론과 국민의 관심과 후원을 더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도 쉬운 일은 아니다. 먼저 싱크탱크간 주장이 유사해야 한다. 한 기관내 연구진 간에도 의견이 다를 수도 있는데 하물며 다른 기관간 입장에는 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한 기관간 연대는 번거로운 일이며 자칫하면 주도권 다툼마저 생길 수 있다. 사심 없고 열정은 충만한 학자들이 있어야 연대가 시작될 수 있다.
그러던 차에 곧 싱크탱크 연대가 출범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연대의 명칭인 ‘진실과 정론’에서 집단지성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국가적 정론을 제시한다는 취지를 읽을 수 있다. 이 연대는 K정책플랫폼(이사장 전광우),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재완), 안민정책포럼(이사장 유일호), 경제사회연구원(이사장 최대석) 등 네 개 싱크탱크를 구성원으로 시작하며 향후 그 범위를 넓혀간다고 한다. 주요 정책 사안에 대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기 전 기관간 의견조율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성과를 보아 가며 기관통합까지 검토할 계획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진실과 정론’의 출범을 기점으로 향후 민간 싱크탱크 연대운동이 활발히 일어나 국가적 의사결정에 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하기를 소망해 본다.